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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Mar 20. 2023

불행은 좋은 일을 끌고 다닌다.

봄은 꽃과 독감을 끌고 왔다.

난 요즘 네가 참 좋아. 물론 곰살맞은 네 오빠는 여전히 내 옆에서 귀염을 떨며 행복을 주지만 걘 그냥 내 아들일 뿐이고. 넌 친구 드문 내게 친구가 되어주니 좀 차원이 다르게 좋단 말이야. 상위 2% 타고난 소두에 동지애도 느끼고, 흔들리는 이빨 빠질까 봐 전전긍긍 발 구르다 한 입 베어 문 사과에 쏙 빠지니까 기쁜 척, 씩씩한 척하고 있는 모습을 (그런데 정작 눈엔 ‘어안 벙벙하다’가 가득하고 퐁퐁 솟는 피가 무서워 입 벌리고 있는 건 정말 귀엽고.) 보며 내 영혼을 쏙 빼닮았다, 생각했지. 어느 날 내가 한껏 멋 부린 채 터전에 갔더니 나를 보자마자 “와! 우리 엄마 공주 같다” 며 와락 안기는 너의 사랑에 나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행복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런 네가 아파서 계속 울고 있어. 외가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 캄캄한 차 안에서도 빛나는 네 두 눈 속엔 영문 모를 이 고통이 무엇이냐고 나를 향해 따져 물었지. 나도 울고 싶었어. 신에게 따져 묻고 싶었지. 왜 이 조그마한 아이의 몸이 불덩이가 되어야 하냐고 말이야. 그런 끝에 우리는 왜 사는지 궁금해졌지. 불현듯 고통은 찾아와 괴롭게 하는데 우린 왜 태어나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네 고통의 1도 덜어오지 못했고 단 몇 시간 만에 핼쑥해진 너를 보고도 밥 한 술 먹일 수가 없는데 나는 엄마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속수무책으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 어여쁜 너를 만나 누리는 행복만큼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일까. 넌 아픈 내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그 낯선 공포를 혼자 견디게 해야 하니 나란 사람은 무용지물처럼 느껴진다.


영원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순간 속에 있데. 고통과 아픔이 도처에 있음에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영원하기에 우리는 사는 걸까? 괜한 궤변을 풀어보는 건 그냥 나 위안 삼고 싶어서. 오늘 내가 겪은 고통이 결코 얕지 않았기에 그걸 버텨내고자 힘을 내려고 발악이란 변명을 하고 있는 나를 용서해 주면 좋겠다.


사랑해, 우리 아가. 난 네가 내 딸이라는 게 기적이라 생각해. 네 엄마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영원 속에 박제된 기적임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얼른 훌훌 털고 일어나자. 나는 너랑 백화점에 가서 브런치를 먹고 싶어 졌어. 며칠 전 아빠랑 갔던 그곳에, 이번엔 티파니 블루 소파에 나란히 앉아 너랑 맛있는 크림 리소토와 어니언 수프를 나누고 싶어. 우린 고기는 안 좋아하고 크리미 한 음식 좋아하는 고상한 취향을 가졌잖아. 그 순간을 영원 속에 밀어 넣으며 회포를 풀고 다시 행복을 되찾아 오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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