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코. -‘든든한 아군이자 치명적인 적군’
한 때는 내가 가족에게 온전히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가족이니까. 든든한 ‘내 편’이니까. 가족이 ‘나’를 나만큼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정도의 공감’과 ‘일정 부분의 이해’는 가족 간에 가능하지만, 그 이상 서로에게 ‘완벽한 이해’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께 나의 고민을 털어놓아도, 그분들은 당사자인 나와 같은 정도로 그 심각성을 안고 내용을 고민해볼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님께서 최선을 다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에 ‘본질적인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했을 뿐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혼에 들어가거나 그 사람이 되어 직접 그 고민을 체감해보지 않는 이상, ‘문제의식 파악의 깊이’가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공감’이라는 말이 ‘남의 감정과 의견에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라면, 과연 얼마나 어디까지 그렇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상황과 조건에 따라 공감이 이루어지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나는 그 범주에 ‘완벽 일치’는 없다는 한계를 짚어볼 수 있었다. 이는 내가 자연스럽게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한다’는 표현을 보다 신중하게 사용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한계점을 깨달은 것은, 오히려 내가 공감과 이해를 전보다 더욱 가까이 두고 실천하도록 만들었다. ‘완벽함’이라는 상한선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끝까지 하고 싶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한 정도보다 훨씬 더 많이 더 깊이 공감하고 이해해야, 그중 일부만이 상대에게 전해지는 것이라면, 나는 더욱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싶다.
“‘공감’과 ‘이해’의 무게를 느끼게 되면서, 신중함과 함께 묵직한 책임감도 같이 따라온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가족들의 아픔과 힘듦을 본인과 똑같이 느끼고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여,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엄마와 할머니의 살림에 있어서의 어려움들을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 온 마음으로 받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살림에 대해 문외한이던 나는, 휴학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요리와 기타 집안일들을 무작정 하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평생을 나는 집에서 개인적인 공부와 실기 연습에만 몰두하여 살아왔다. 내 할 일을 하기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껏 집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나는, 도전했다. 그제야 ‘집안일에 평생을 보내시는 엄마의 북받치는 서러운 감정’이, ‘할머니의 한숨 섞인 목소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처지에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이, 집안일이라는 말’이 그토록 절절하게 다가온 적이 있었을까.
그 사람과 동일한 입장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그 상황에 내가 들어가 보려 노력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경험에 비례하여 ‘등가의 감정’ 선 언저리라도 가볼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피상적인 ‘위로’를 성급하게 전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후회감이 밀려올 때,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족이 ‘나의 편’이 되어 주기를 바랐던 만큼, 나는 ‘가족의 편’이 되려 했던 적이 있었는지 떠올려보면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더 근본적으로는 ‘가족’에게 ‘편’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리고, 미숙해 보였다. ‘내 편’의 구분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서로에 대한 ‘공감’이다. ‘편’이라는 말은 결국 ‘공감’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이제 넓은 시각에서, ‘가족’의 수식어로 ‘나의 편’보다 ‘나를 공감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적고 싶다. 쌓이는 경험치가 달라지고 약간의 연륜이 생기며, 나는 보다 ‘깊은 공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은 내 평생의 숙제이다. 그리고 그 정성에는 끝이 없지만, 이 또한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위하며, 이해와 공감을 가까이하면, 가족은 존재 자체로 ‘든든함’이 되어 줄 것이다.”
특히 엄마는 나에게 ‘차고 넘치는 든든함’의 대명사로 함께 계신다. 엄마와 나의 친밀도는 무서울 정도로 높다. 딸과 엄마는 나이가 들어 단짝 친구처럼 지낸다는 말이 있듯이, 점점 나와 엄마는 꼭 붙어 다닌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나의 비밀’을 엄마에게 공유하는 경우도 많다. 엄마 앞에서는 가다듬어지지 않은 나의 생(生) 모습, 풀어헤쳐진 본모습을 보여도 좋다고 여긴다. 정제되지 않은 고민들을 낱낱이 털어놓는다. 이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 민감한 문제와 중대사까지… 대화의 주제는 한없이 얕다가 깊어진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는 나에게 상당히 긍정적이다. 정서적 안정감, 안락함, 소통의 기쁨을 안겨준다. 하지만 때로 부정적인 영향을 지니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언제나 있듯, 우리 모녀의 사이에도 불편함은 싹트고 있었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나와 초 근접해 계시던 엄마는 ‘나의 명백한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엄마와 나 사이에 ‘어떤 벽’도 없이 모든 것이 솔직하게 공유되면서 만들어진 현상이다. 누군가 나를 속속들이 너무 많이 알고 있어, 모르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히며 불안한 것이다. 마치, 나의 약점을 알고 있는 ‘치명적인 적군’을 마주한 느낌이라고 할까. 모순적일 수 있지만, 가족이 나의 어떤 점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도, 때로 나의 모든 면을 알고 있는 것이 싫었다. 정확히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나에게 무한한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이 훨씬 크지만, 가족 구성원 간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가족이라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감정과 모습이 있을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은 서로의 일부 거리두기를 ‘존중’ 해 주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공개’가 가족의 솔직함과 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위의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두가 편안한 상태의 솔직함’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서로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열어야 ‘가족의 참된 소통’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솔직함에도 중용(中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