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 늘 Sep 20. 2021

사랑 덩어리 -"코, 코, 눈"-

# 다섯 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30초’의 시간



# 다섯 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30초’의 시간 


나와 엄마가 가까운 만큼 가장 많이 싸우는 것도 사실이다.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모녀의 싸움은 한 번 터지면 끝을 보기가 어렵다. 둘 다 이성이 나간 사람들처럼, 평소의 따뜻함은 온데 간데없이 폭풍 같이 날카로운 감정을 휘몰아친다. 그중 내가 제어하지 못할 정도의 감정 상태로 만드는 것은, 엄마의 한마디다. 나의 ‘궁극적인 약함’을 들추는 것. 밑바닥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마음이 찢어진다. 가족이 가장 편치 않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족이라도, 가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는 이 ‘반복되는 상처’를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상처의 문장은 대부분 표현 그대로의 ‘의도’를 담고 있지 않다. 따로 존재하는 ‘진심-본 의도-‘로부터 멀어져, 홧김에 공격적으로 던져진, 왜곡된 표현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 과한 표현 이전에 담긴 ‘진짜 생각’을 살펴봐야 한다. 그 표현이 나오기까지 원래 상대방이 전하고 싶었던 진심과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엄마가 나에게 말씀하셨던 것 중에, “도대체 너는 무슨 오지랖이 그렇게 넓어. 네 스스로도 잘 못 챙기면서 무슨 남을 챙기니.”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담긴 엄마의 본 생각은 다음과 같다. ‘몸과 마음 다 갈아서 남을 챙기다가, 네가 지쳐서 정작 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할까 봐… 엄마는 그게 걱정이 돼.’ 풀이를 보면, 내가 나를 잊고, 나보다도 타인을 더 생각할 때가 많은 점을 염려하시는 것이다. 나에 대한 사랑이 있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 있을 수 있는 것인데, 그 순서가 전도되는 상황을 계속해 만드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리셨던 것 같다. 내성적인 내가 대인관계에서 혼자 감당하지 못할 속사정으로 힘들어할까 걱정해주시는 마음이 들어 있는 것도 이제는 안다. 


문제는, 이미 감정적으로 서로 날이 서 있는 상태에서는 같은 멘트가 지금처럼 필터링되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해를 하기 위해 서로 차분히 대화를 하다 보니, 그 안에 나를 바로잡아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을 진심으로 아껴 주시는 당신의 세심함이 느껴져서 나는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당시에 들은 엄마의 멘트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순간적인 서운함’에 이런 엄마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나는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 타인에 대한 ‘애(愛)’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방향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뜻을 분석하기도 전, ‘오지랖’이라는 다소 좋지 않은 어감의 겉 표현에 ‘상처’부터 받은 것이다. 


내가 가족 구성원과 무수히 많이 다투면서, ‘상처되는 말’에 대한 극복으로 정리해볼 수 있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가족 구성원의 ‘다소 억세고 무거운 조언부터 가벼운 잔소리까지’ 실은 모두 ‘사랑’이 우선하고, 사랑이 전부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릴 것이다.” 우리가 싸울 때 감정적으로 격분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과장과 왜곡 없이 정확하게 말한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다툼의 현장에서 ‘30초’를 가진다. 이것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서, ‘정상적이지 않은 감정의 휴식 시간’이다. 여기서의 요점은, 과열된 감정과 흥분의 분위기를 의식적으로 가라 앉히기 위한 ‘냉각 타임’의 역할이다. 이 시간만큼은 ‘나의 감정과 생각’뿐 아니라 ‘상대방 감정의 원인과, 생각과 문제의식’에 대해 정리해볼 수 있다. 이러한 휴식 시간을 고안해내게 된 것은 더 이상 내 잘못이 없다는 ‘무조건적 방어’를 피하고 싶은 이유가 크다. 상대의 잘못을 먼저 따지지 않고, 나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기 위해서 만든 과정이다. 


나는 가족 구성원에게 잠시 30초의 시간을 주고, 나를 기다려줄 것을 부탁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다툼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와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하다. 혼자 눈을 감고 몇 가지를 질문한다. ‘1. 상대가 나에게 무엇이 화가 난 것일까?’, ‘2.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3. 상대의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렇게 30초의 시간이 지나면 다툼의 판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새롭게 보인다. 가족의 다툼을 가장 첨예하고 올바르게 겪기 위한 자세는, ‘서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다. 다툼 안에 숨어 있는 우리의 핵심적인 의견이 드러날 수 있도록 장애물을 걷어내는 것이다. 


“감정적 대립을 지양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훈련.” 
“가족에게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기보다, 상처 받을 상황이 왔을 때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순간적인 상처는 끝내 상처로 남겨 놓아서는 안된다.” 
“응어리는 풀고, 넘어가기 위함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 덩어리 -"코, 코, 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