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부터의 해상도 : 익숙한 낯섦 >
'일상'이라는 말, 참 진부하고 재미없는 말이다.
아니,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말 중 가장 재미있는 말이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고, 그 순간에 멍한 표정을 짓고,
무엇인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 '선생과 학생'은 똑같이 반복되는 시간표 아래에 정해진 수업을 척척 진행한다.
그리고, '연인'들은 사랑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유별나지 않아 보이는 풍경들, 그래서 더욱 불가해한 모습들.
즉, '일상'이다.
일상이라는 말은 나에게, ‘무섭고, 설레고, 버겁고, 행복하고, 따뜻하고 냉혹한 무엇’이다.
알면 알수록, 언젠가부터 더 알 수 없는 미지이다.
일상이 너무나 소중해서, 이것이 자그마치 깨져 버릴까.
내 앞에서 사라져 버릴까. 전전긍긍.
문득 일상은,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며 조심히 다루고 싶은 ‘보배’이다가도,
흔하고 흔해서, ‘특별하지 않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막 굴려 먹는 값싼 것’이 된다.
이처럼 '일상을 논하는 일' 자체가 힘겨운 것은,
한 갈래의 방향으로 특정되지 않는 ‘일상의 특질’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단면들. 끝내 “삶의 불가해한 단면들”.
우리는 일상을 잘 알고, 제대로 이해하며, 심혈을 기울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앞에 주어져 있어서, 그 일상에 몸담으며 살아갈 뿐이다.
그 무수한 단면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중심의 축,
'일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가 있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착각 속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코로나 덕분에, 그것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일상은 '값싸거나 값비싸고', '희소하거나 희소하지 않고', '특별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하나의 기준과 잣대는 “일상의 해상도”를 높여주지 못할 것이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은, 그런대로 복잡하게 보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일상의 범주’, 그 ‘광활한 폭의 미묘함’을 섬세히 감각하고 관찰할 일이다.
코로나가, '일상을 앗아 갔다'라고들 한다.
우리는 여행을 마음 놓고 가지 못하고,
친구들과 마스크를 벗고 담소를 나누지 못하며,
수업은 15인치 노트북 화면 속에서 인터넷을 타고 이루어진다.
뒤죽박죽이 되고 나서야, '평소'와 같은 모습을 잃고 나서야
“있던 것이 없어진 후”에야,
결국 '평소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던 어떤 현자의 말처럼.
코로나는 나에게 '일상이 무엇인지', 더 알고 싶게 만들었고,
'그 일상을 찾고 돌아가고' 싶도록 이끌었다.
코로나 시대, 조류에 휩쓸리지 않을 나는 또다시 일상으로 회귀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