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 회의 많이 하면 공산당이래요

회의를 회의하다

by 이주영

'국민당은 세금을 많이 걷고 공산당은 회의를 많이 한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아. 무언가 답답해질 때면 본질인 명제를 찾는 버릇이 있다.


회의란 무엇인가.

회의 : 2명 이상이 모여 어떤 안건을 의논, 교섭하는 행의 능률적으로 의제를 결정해나가는 절차.(네이버 지식백과사전)


업무효율상 회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쓸데없는 회의는 업무능률만 낮출 뿐이다.


공직사회에서 경험상 일을 가장 못하는 부서는 회의를 많이 하는 부서이다.

특히 직장분위기가 완전한 상명하복 관계의 공직에서는 소통이 조금도 수평적이지 않고 일방적이다.

대화란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 내 소신과 의견을 내었다간 튀는 직원, 순종 또는 순응적이지 않은 직원, 할 말 다하는 직원으로 낙인 된다.


상부에서는 '운영계획 수립', '목표치 설정', ‘의견조회’라는 이름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으니 더 구체화하라는 지시 문건이다. 한마디로 답정너!이다.


그런 문건을 가지고 상사는 회의를 한다. 제안에 대한 실행 가능 여부는 당연 고사하고 우리 기관이 아니면 우리 부서가 어떻게 하면 제안에 부합한 제안을 또 더해 타 기관보다 차별화로 되어 튀고 성과를 두드려지게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리고 그 성과는 오롯이 한직원의 개별적 평가가 아닌 부서장의 성과이다. 부서장이 고민할 문제를 자꾸 직원들에게 뽑아내라고 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대장 중에 대장. 대빵의 계획에 살을 더하고 더하라는 채찍질이다. 반복되는 회의를 거치다 보면 업무의 효율과 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부서장의 성과만 남는다


일에 일을 더한 일은 가득 만들어 내면서 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듣지 않는다. 대부분 대장들은 사무관 행시 출신이기에 처음부터 상사로 와서 실무를 글로 배운다. 책상에서 머리만 굴릴 뿐이다.


실행 가능성의 곤란함에 대해 말하면 바로 인상부터 찌푸리면 ‘안 되면 되는 방향을 만들어 보고하라’고 한다.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것이다.


취지가 이상적이라는 것은 안다. 방향성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지 않으려는 고압적인 자세가 너무 힘들다.


오늘도 2시간 걸친 회의 마치고 다시 그룹 면담을 하고 내일 다시 통합 회의를 한다고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조직이라면 회의하는 것은 합당한 일인지만 공직에서는 그렇지 않다.

본연의 업무만으로도 점심시간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데 자꾸 무의미한 회의를 하자고 하니 야근은 따놓은 당상이다.


people-ge1205bf4b_1280.jpg 우리도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로 회의할 순 없을까


일이 많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이번 달 초과근무 0시간이던데. 나는 어제도 야근했어.”


내 자리로 돌아온 나는 갑자기 속이 답답하고 시야가 흐려지며 눈물이 또르르 떨어진다.

워킹맘으로 혼자 육아를 하는 나로서는 야근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말 아이가 잠든 시간에 일하거나 점심시간에 일한다.


개인의 사정이야 관심도 없고 보이지 않으니 말해도 듣지도 믿지도 않는다.


사실 일이 많아서 야근하는 직원보다 초과근무 수당 때문에 초과 근무하는 직원이 더 많다.

업무 시간을 다 사용해도 일이 많으면 조정해 줄 일이지. 초과근무 시간으로 업무량을 따질 것이 아니다.

그래서 초과근무 수당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업무시간에는 놀다가 초과근무를 하고 있으면 상사들은 그 직원이 일이 많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나와 같은 워킹맘들은 당연 초과근무를 안 하니 일이 느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직에 대한 충실도 역시 초과근무를 하는 남직원들을 더 높이 평가한다.


또 초과근무를 한다는 것은 저녁에 시간이 있다는 것이므로 일 대충 마무리하고 상사들과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렇게 초과근무를 하려고 남은 직원들은 거의 대부분은 한잔 기울이다 퇴근하며 그들만의 끈끈한 무엇인가 생긴다.(나도 결혼 전에는 그런 연대가 있긴 했다)


그래서 상사들은 업무분장 회의를 할 때 남직원이나 미스를 데려오려고 애를 쓴다.


상사들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많고 외롭다.

시간이 많은 것은 관리자로서 대부분 검토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고

외로운 것은 평가자가 되면서 직원들이 어려워해 친밀하게 어울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책들은 거의 중장년으로 아이들도 거짓 성장해 아빠와 놀아주지 않는다.


중년들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늘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 문제다. 타인과 타인의 이야기에는 사실 큰 관심이 없다.

바람직한 소통의 자세는 아니다. 아니, 아예 소통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하는 회의란 부장님 설교 말씀과 같다.


15년째 몸 담고 있는 공직사회에서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이고 아직도 답답하고 이방인이다. 이럴 때는 글만 쓰는 작가나 전문성을 가진 프리랜서 또는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광고기획자(아예 회의가 일인 회사)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몹시 부럽다.


일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끄적인다. 글을 쓰다 보니 완전 염세주의자 회의주의자(회의는 싫어하는)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좋은 마음(이해와 포용의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렇게 그냥 글로 털어 떨궈버리고 다시 일하자. 브런치에서 나는 할 말 다 할 수 있는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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