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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Mar 30. 2022

술 먹고 노숙하려고 캠핑하냐

캠핑을 해야 하는 딱 한 가지 이유

캠핑을 시작할때만 해도 난민촌 같았던 캠핑장이 갬성 캠퍼들로 인해서 낭만촌이 되었다. (▲  요즘 캠핑장.  난민촌에서 낭만촌으로)

  

비가 오거나 너무 춥지 않으면 매주 캠핑을 다.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풀려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따스한 햇살과 피어나는 꽃봉오리들을 만나면 오랜 동면을 깨고 나온 개구리처럼 캠핑장 예약하는 손이 팔짝팔짝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이렇게 캠핑을 좋아하는 내게 동생이 말했다.

"술 먹고 노숙하려고 캠핑하지?"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이해를 못 한다. 캠핑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캠핑은 번거롭다.

짐을 꾸리고 짐을 펼치고 다시 짐을 싸는 일이 절반이다.


고루지 못한 잠자리도 불편하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발가벗고 씻어야 하며 여러 명과 변기 넘어의 소리를 공유하는 화장실을 써야 한다.

설거지를 하려면 빨랫감을 든 나루터의 아낙네처럼 설거지통을 들고 개수대에 줄도 서야 한다.


이런 캠핑을 왜 하느냐는 것이다.

캠핑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렇게 수십 가지이지만 캠핑을 해야 하는 이유는 딱하나이다.


자연 속에서 즐기는 불멍! 


불멍은 힘이 있다 . 망각의 힘( 불멍 = 망각)


이 얼마나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행위인가. 왜 나는 원주민들이나 행했을 캠프 파이어 같은 의식 행위에 중독되었을까.


불멍을 하면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세상이 다 흐물흐물하다몽환적인 환상 속에 니글니글한 흐물거림은 내 피로와 상처와 공허를 쪼개고 쪼개 한줌의 재로 날려 보낸다.


숲, 불, 술, 책 :  숲 속에서 불멍 하며 술 마시고 책 읽는 게 낙인 나 (▲ 그냥 멍때리고 있는 남편. 멍때림도 중요한 힐링이다.  힘들었던 한주간의 고충을 태우고 있겠지)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도 나에게 쉼표를 준다.

숲은 나에게 '너 쉬고 있다'라고 말하며 숲이 나를 품고 있다.

엄마에게 안기는 듯한 안락한 품속. 숲이 캠퍼들에게 내주는 선물이다.


하루 종일 앉아 멍하니 나무와 새와 숲을 바라본다. 그리고 먹는다. 그리고 마신다. 이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원초적 행위가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세속의 삶에서 나는 치열하다. 바쁘다. 정신없이 달리고 혼나고 쫓긴다. 그런데 숲속은 나한테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말해준다.

숲속의 품(숲이 주는 위로)


그리고 내가 겪었던 그 모든 한주 간의 일들이 극히 사소롭고 쓸데없다고 말해 준다. 나의 고민과 상처들이 실상 별것도 아니라고. 소소하고 유치하다고 말해 준다. 그래서 그것들은 한없이 작아진다.


한 번은 딸아이가  텐트에 (이름 모를) 벌레가 들어왔다며 짜증을 내며 아내라고 성화였다.

벌레는 나도 무서워하지만 딸이 상당히 호들갑을 떨길래 말했다.


외동딸 (아주 살짝 지밖에 모름)


"여기는 원래 저 벌레의 집인데 우리가 침입한 거야.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해야지"라며 달랬다.


벌레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하고 날려 버리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모아 툭 튕겨버렸는데 아귀힘이 셌는지  벌레가 땅에 꼬꾸라져 죽어버렸다.


"그러려던 게 아닌데 정말 미안해. 에휴"


미안함에 즉흥시를 지었다



-나그네와 불청객 사이-


숲 속에 내가 있다.

이 숲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숲에 사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존재들

그들의 삶 터전에 불쑥 들어온 방문객.

숲의 정령과 주인들에게 불편한 불청객.


세속의 묵은 때로 더러워진 우리가 와서

미안하다.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조금만 쉬었다 갈게.


그리고 타오르는 겸손한 열정.

모닥불이 타고 있다.

타닥타닥!


이 모든 것에 내 마음이 토닥토닥!  

                                        

어느날 놀랍게도 근처 강에 살던 거위가 우리 텐트에 찾아왔다.(▲우리는 불꽃놀이로  환영하며 거위와 함께 춤을 췄다)


숲에게 받는 위로와 감동.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이 게으르고 느긋한 사치. 이 좋은 것을 왜 모를까. 짐을 꾸리고 펼치고 싸는 것은 캠핑이 주는 행복에 비하면 즐거운 수고로움이다.


꾸리고 펼치는 것은 어른들의 소꿉놀이와도 같다. 즐겁고 설레기만 하다. 오늘은 또 어떤 낯선 숲에서 자게 될까. 그 숲은 어떤 말을 해 줄까. 이 땅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 똑같은 숲도 없다.   

(물론, 퇴실시간에 맞춰 짐 싸는 것은 즐겁지는 않다. 쉼표가 끝났고 일상의 복귀를 의미하므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술을 마신다.  깨끗한 공기와 이슬을 안주삼아 마시는 참이술은 다음날 숙취도 없다. 집에서 술을 마시면 매일 다투는 우리인데. (서로 '내가 짱이다'. 혹은 '내가 고생이 더 많다'라는 이유의 무한반복)


숲에서는 안 싸운다. 여기서는 캠핑장 주인의 손님이자 자연의 방문객이며 나눔의 공간이다.

숲이라는 자연의 고요한 풍요는 우리 마음에도 여유와 풍요와 이해를 선사한다. (사실 밤 10시부터는 매너타임이라... 고성이 오가면 끌려간다)


아끼는 동생도 숲의 품 안으로 젖어들기를 바라며...



군고구마 한입 하고 가 (너는 군고구마 까줄 때가 제일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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