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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Mar 29. 2022

어느 날 남편이 전자발찌를 차고 왔다

-이것이 실화다-

남쪽 마을 소도시 출생인 그는 가까스로 인서울 4년제 대학 법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당당히 실력으로 입학했지만 유독 작은 키에 카만 얼굴. 한참이나 유행이 지난 두꺼운 뿔테 안경은 모든 이로부터 그가 그 학과에 딱 한 명 있다는 '농어촌 특별전형' 출신임을 믿게 만들었다.


그는 관심도 없는 법학과를 간신히 다니며 학교 주변을 겉돌았고 졸업은 하였으나 높은 취업의 진입장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법학도의 길은 법조인이 되거나 학문의 길을 걷거나 둘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몰랐다. 기업에게서 법학 전공자는 이윤창출에 도움을 줄 수 없는 부류였다.


그는 사법고시를 해보겠다고 절에 들어간 지 불과 2달 만에 자신 머리의 한계를. 아주 다행히도 일찍 감치 깨달았으며 더 중대한 사유. 고기가 먹고 싶다는 이유로 뛰쳐나와 삼겹살에 소주를 적신 후 노량진으로 향했다.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공무원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였다.

그의 선택은 언제나 주변 환경과 주변 사람들에 의해 쉽게 흔들렸고 자신의 주관과 소신을 믿지 못하며 불안해했다.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다 아니다 싶으면 슬그머니 도망쳐 대세의 트랙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 합류했다. 하지만 공시족 생활과 합격은 녹록치 않았다.


주변에 의해 대부분이 결정지어졌던 그는 그렇게 노량진의 주변인이 되었다. 그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고시원과 학원을 그저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 같은 생활을 지속했다. (아마 다른 대안이 없었으랴)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건 실력이 아닌 뱃살과 주름과 목티. 그리고 가족에 대한 민폐 뿐이었다.   

그러다 어떤 하루. 그의 친구가 올해 백 명이나 채용규모가 늘어난 직렬이 있다며 같이 시험에 응시하자고 하였고 그는 합격했다. 친구는 떨어졌다. (그 후 그는 친구를 원망하게 된다. )


그렇게 그는 9급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전자발찌 담당자가 되었다. 그리고 내 남편이 되었다.


남편이 담당하는 전자발찌 대상자들은  실체인지 심리 탓인지 남편보다 덩치가 훨씬 커 보였다. 억울. 슬픔. 분노와 사연이 압축된 눈빛은 강렬한 기를 뿜으며 번뜩이고 있었고 가슴속엔 무엇인가에 대한 원망과 상처 가득한 화를 품고 있었다. 보통사람들 보다 많은 이야기가 있는 그들이었다.


남편은 운동이라곤 해본 적도 없으며 툭하면 바이러스성 염증 수치로 쓰러져 며칠씩 병원신세를 져야 하는 유약한 체질이었다. 한 번도 경찰이 되거나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인물 같은 것은 꿈꾼 적이 없었다. 그가 꿈꾸던 것은 그저 9급 공무원이었다.


남편은 5교대 근무를 했고 당직날은 대상자의 위치를 추적하는 일을 했다. 평소에는 별반 큰 사고가 나지 않았다. 그는 밤샘 야근하면서 자꾸만 무엇인가를 먹었다. 치킨, 피자, 과자, 콜라, 코로케 등등

몸속에 콜레스테롤. 지방 찌꺼기들은 나날이 쌓여만 갔고 체중이 급격히 늘었다. 야심한 밤에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 왜 먹냐고 닥달했다.


"너무 졸려서 먹었어. 경보 발생하는데 조느라 못 들으며 족되거든"


식탐인 줄 알았는데 잠 깨려고 그렇게 먹었다니. 순간 코끝은 찡~ 마음이 짠~ 해질라는 찰나 생각해보니 아니다. 원래 먹는 것을 엄청 좋아했다.


하루는 나는 자면서 뒤척이다 베개 밑에 손을 넣었다. 차갑고 단단한 묵직한 어떤 물체가 손을 스쳤다.

'뭐지'

꺼내서 커튼 틈으로 얇게 새어 나오는 달빛에 비추니 반짝이는 날카로움.

식칼이었다.

사람은 너무 놀라면 소리가 안 질러진다. 로또 1등 당첨금 확인할 때나 말하는 '억' 소리가 명치에서 울렸다.


서둘러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비몽사몽해 하며 아무것도 아닌 듯 말했다

"꿈속에서 대상자들이 자꾸 자기를 괴롭히잖아. 미안" 하고는 다시 잠에 든다.


"네 꿈보다 이 식칼이 더 무섭거든!" 꽥 소리를 지르고 다시 부엌에 가져다 놓았다. 분했다. '자기 마음 편하자고 나를 놀라게 하다니' 하지만 이내 안쓰러웠다. 그러고 보니 며칠째 악몽으로 남편은 매일 밤 가위에 눌렸다. 내 베개 밑에 식칼을 넣어 두고 나서야 가위에 눌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심신이 유약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중요한 일을 맡는다고... 맞고 다니지나 않는 건지....


어느 날은 한 달 용돈 30만 원 받는 남편이 갑자기 20만 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대상자가 고시원비가 없어서 다음 달에 당장 쫓겨나게 되었는데 궁지에 몰리면 나쁜 생각을 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자선 사업하냐며 볼멘소리를 냈지만 나도 걱정이 돼서 돈을 보내 주었다.


남편(이하 '그')에게서 들은 대상자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살아온 인생 여정 가운데 한 번도 따뜻한 사랑과 인정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그는 인간답게 대접받은 경험이 인간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대상자들에게 매일 빵이며 요구르트며 먹을 것을 사다 주었고 문화공연도 함께 보러 다녔으며 얼마 전에는 그들과 부산여행까지 다녀왔다. 그는 발찌 대상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집에 발에 발찌를 차고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배터리가 오래가면서도 콤팩트한. 슬랙스 바지 밖에서도 튀어나오지 않을 정도로 얇고 예쁜 신형 발찌가 나왔단다. 새로 개발한 발찌 신호가 관제센터(모니터에 큰 지도를 띄워 신호 잡히는 장소를 확인하는 곳)에 잘 잡히는지 테스트하는 중이라고 했다.


"관제센터 모니터에 우리 집이 빨간 점으로 깜빡이고 있고 수많은 눈들이 '신형 모델이 잘 작동 되는 군' 이라며 확인하고 있는 거네"


그는 이내 팬티 차림에 발찌를 차고 잠이 들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니 그냥 이유 없이 싫고 어이가 없었다. 무더운 한여름 밤에 이불을 휙 던져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덮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온정적이고도 따뜻한 친구가 되어주었음에도 자유를 향한 강한 절규였을까. 또 누군가에게 향하는 분노였을까. J가 발찌를 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5일 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급히 신속 수사팀을 꾸리고(그래 봤자 옆자리 동료들) 팀원들과 함께 J를 찾아다녔다. 경찰서에는 바로 공문을 띄워 수색에 협조를 구했고 관제센터 직원들과 위치를 수시로 송수신해 가며 쫓고 있었다. 그렇게 끊어진 발찌와 발찌 주인을 찾은데 전력을 다했다.  


정신없는 이 와중에서도 본부에서는 지휘 감독이 들어왔다. 그와 그의 팀이 제대로 잘 찾고 있는지 제대로 관리했었는지 감사와 감독을 동시에 받게 되었다.

발찌는 J가 끊었지만 그 행동에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담당자인 그의 몫이었다.


그는 J가 자유가 되면 어디를 제일가고 싶어 할까를 고민했다. 그러다 불현듯 J가 형기종료 되면 가보고 싶다던 산중에 호수가 있다는 지명을 떠올렸다. 깊은 산은 신호가 잡히지 않아 발찌를 차고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들어가면 경보가 울리게 되어있다.


'시간이 없다. 바로 팀원들과 산으로 간다.'


잔뜩 긴장을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그와 팀원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건.

햇빛이 잔잔히 부서져 내려앉아 반짝이는 호수. 그 호수의 넉넉함에 넋을 잃었다. 호수는 너무도 고요했다.

평온함은 모든 에너지를 삼켜 압도해버렸다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는 모든 것이 힘을 잃고 한없이 작아졌다.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주임님...주임님 근방 5미터 안에서 발찌 신호가 ... 희미하게...'

'어...다가 간다'


'주임님... 바로 뒤요'


그의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오뉴월에 한기가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J가 호수를 품은 그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는 그토록 찾아다녔던 목표물을 앞에두고 더듬더듬 바보같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모해? 밥은? "


어이없고 촌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J를 잡을 생각이 없다. 그럴 능력이 없다. 달려드면 바로 제압당하고 말것이다. 그 동안의 J와의 라포.

그가 사 준 빵과 요구르트를 나눠먹었던 일들. 함께 영화를 보았던 사소한 경험만이 그의 무기였다.

그가 한 말 이면에는 '나랑 같이 가자'라는 속마음이 담겨있었다. 적어도 그의 촉촉해진 눈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J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가.


J가 30센티 남짓되는 사시미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던졌다. 그리고 두 손을 내밀었다. 그는 J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대신 J의 손을 잡고 내려왔다.


J는 자신을 배신한 전 여자 친구를 찾아가 죽이려고 했다고 했다. 그 후 자수를 하려고 했는데 실행 전에 이 호수를 마지막으로 보고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호수가 너무 아름다웠고 호수와 함께 했던 행복했던 애인과의 반짝이던 추억으로 잠시 망설이던 참이었다고 했다.


J는

"이렇게 찾아내 줘서 고마워요" 라며 씩- 웃었다.


그도 여유로운 미소로 화답했지만, 조금만 늦었으면 누군가가 희생되었을지도 몰랐을 것을 생각하며  뜨억! 뜨억! 했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라고 헉! 헉! 안도의 한숨만 수십 번 쉬며 천식환자처럼 숨을 몰아 내었다.


5일 만에 집에 들어온 그는 무엇이 신나는지 거지꼴로 밥을 아주 게걸 지게 먹었다. 나는 그런 남편을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노려보았다.

반찬이라고는 초라하게도 김치와 김. 계란밖에 없었지만 그는 밥맛이 꿀맛이라며 좋아했다.



-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당신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우리를 구하고 있는 당신들은 숨은 영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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