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어떻게 하면 바쁜 워킹맘이 시간을 쪼개고 쪼개 독서모임을 찾아다닐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우리 집에서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이 오직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 작가 실배님의 책('모든 것은 독서모임에서 시작되었다')과 브런치를 통해 가족 독서 모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독서모임을 찾아다닐 것이아니라 내가 해보자라는 생각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우리 가족은 구성원이라고 해야 겨우 1년은 고사하고 한평생 교과서 외 책 1페이지도 안 읽는남편과 이제 한글을 막 뗀 올해 7살짜리 딸내미가 전부.
먼저 남편의 반응은 '피식- ' 웃어버려 넘기는 것으로 끝났고 딸은 '그게 뭐야'라는 답변이 나와 머리가 지끈했다.
'매주 주말 토요일 아침 9시에 책 1권을 정해서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눌 거야'
매주 토요일 아침 9시로 정한 것은 우리 가족이 그 시간에 모여 TV를 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주말부부인 우리는 금요일 늦은 저녁에야 남편이 집에 오고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아이에게 TV를 틀어주며 하루가 시작하는 것에 대한 방어책이었다.
그런데 왠지 불안감이 덮쳤다. 이런 반응이라면, 시간을 늦추면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금주 주말은 친정에 다녀와서 피곤한 일요일 저녁이었다.
주말이 끝났다는 아쉬움으로 의욕을 잃은 시간. 무언의 눈빛과 침묵은 아직 켜지도 않은 TV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안돼! 지금 당장 하자'
일요일 저녁 7시. 저녁을 서둘러 치우고 아무런 준비와 계획도 없지만 독서모임을 해야겠으니 모두 모이라고 했다.
그리고 7살이 딸이 읽는 동화책을 하나를 가져와 한 줄씩 번갈아 읽었다. 번갈아 있는 동안 나는 새 노트를 하나 꺼내 빠르게 생각해 볼 문제를 적어 갔다.
책 제목은 '로보캅 폴리의 나눔의 기쁨'이라는 제목이었다.
로보갑 폴리의 마을에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았고. 농사 일을 하는 매그너의 농작물이 말라죽게 되기 직전. 마을 친구들이 모여 매그너의 농작물에 물을 모아 부어 주었고 이후 비가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노트에 생각해 볼 문제를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1. 인상 깊은 장면에 대해 말해보자
2. 가뭄이 와서 물이 부족하면 생길 상황들에 대해 말해 보자
3. 물을 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해보자
4. 나눔의 경험에 대해 말해보자
5. 나눔의 좋은 점에 대해 말해 보자.
이렇게 빠르게 질문을 만들어 낸 후 토론이 시작되었다. 진행은 잘 되었고 순조로웠다. 특히 2번 가뭄이 올 경우 발생할 상황들에 대해 아이입에서 뜻밖에 생각하지도 못한 대답이 나왔다.
'우리 집 어항의 물을 갈지 못해 금붕어들이 병에 걸릴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금붕어를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런 아이에게는 물 부족 상황에서 가장 먼저 닥칠 실질적 위험이었던 것이다.
또한 4번 나눔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때 남편이 나병 환자들이 요양하는 섬에 봉사활동을 다녀왔었던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족도 언젠가 봉사활동을 가보자는 의견도 모았다. (물론 나중에서야 면접을 잘 보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알고 실망했지만)
어쨌든 독서모임은 이렇듯 하나의 책으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이 모여 다시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어 나눔의 경험 발언이 딸 차례가 되었을 때, 남편이 아이에게 '너 어제 재희(사촌동생)한테 스티커 안 줘서 동생 울렸지!'라고 대뜸 혼을 냈다.
비난과 질책이 애정표현인 남편은(그렇게 믿고 싶다) 꼬투리 한 건 잡았다는 식으로 어린애처럼 놀리며 나무란다. 아이는 수치심으로 울상이 되더니 이내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아빠 미워!' 하며 방문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라고 해서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다. 미안함과 부끄럼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욕심을 조절하지 못할 뿐이다. 현재에 충실한 아이는 그저 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낼 뿐인 것이며 주변 어른의 조력과 자신의 경험치로 성장해 가면서 조절력을 키워가는 중인 것인데....
그 사건은 이미 충분한 대화 후 넘어갔었고. 남편은 왜 타인의 과거를 꺼내 부끄럽게 만드는 것인가. 그것도 하필 첫 가족 독서모임 시간에...
남편에게 가시 돋친 눈빛을 쏘아 보내며 달래서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남편은 머쓱해하며 딸내미 방에서 딸에게 무엇인가를 사주겠다고 소곤소곤 약속하고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 이어 준비 없이 모임을 진행한 나의 잘못도 있음을 깨닫고 곧장 새로운 규칙을 정했다.
'독서모임에서는 닉네임으로 호칭하고 존댓말을 사용할 것'
딸은 자기가 좋아하는 과일 이름 '딸기'로 하겠다고 했고
남편은 자신과 닮은 배우 '정우성'(물론 말도 안 된다)으로 하겠다고 했고
나는 이제 막 신내림 받은 점집에서 바꾸라고 했었던 이름인'주영'으로 정했다.
딸기님, 우성님, 주영님 이렇게 서로 호칭하며 존대를 하니 비난하는 일을 없었고 말을 자르는 일도 없었다. 분위기는 가족이 아닌 사회에서 만난 모임처럼 느껴지며 더욱 활기찼다.
그리고 마지막 주제에 대한 토론까지 마치고 박수와 함께 모임이 우여곡절 마무리되었다.
조마조마하게 이어갔으나 모임이 성공적이었다고 느낀 나는 목이 탔고 남편이 마시던 레몬 탄산수를 가져와 마셨는데...
그것은 소주였다.
칼라만시를 탄 소주
'어머! 우성님! 모임에서 SJ를 드시다니요! 저희 모임에 음주는 금합니다. 에효!!!'
(우리 집에서 소주는 SJ, 맥주는 MJ이다. 술꾼 도시 부부임을 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또다시 새 규칙이 추가되었다
비록 한 번의 고비와 남편의 음주행위가 발각되며 마무리되었지만
독서모임을 마무리하면서 정말 시작하길 잘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잘해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면서 티비 위에 커다란 천을 씌워 덮었다. 그리고 우리 집은 이제 티비 없다고 선언했다.
첫 독서 모임이 다들 나름 보람 있었는지 남편과 딸은 전과 다르게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다.
TV를 가리기만 해도 시선이 덜 간다. 일단 천을 걷어내기가 귀찮기 때문이다( 얼마후 집에서 추방될 TV. 현재 집행유예 중)
가족 간에는 일상적인 대화만 오갈 뿐 생각을 나누고 토론을 할 일이 생각보다 거의 없다. 공감대도, 말 수도 점점 줄어들기만한다. 독서모임 1시간 동안 1가지의 주제로 10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말 좋았다.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피어나기도 했다.
습관만 된다면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며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자신한다. 독서모임 이후 아이는 전보다 책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다음 모임에 선정될 책을 고르기도 하고 독서모임의 이름을 정한다고 누워서 계속 고민을 하기도 한다.
독서모임 회원 딸기님
아이는 수많은 이름 끝에
'아름다운 다감이네 가족 독서모임'을 줄여
'아다 모임'이라고 정했다.
아다! 아다! 아다모임!
아자! 아자! 파이팅 ~!
첫가족 독서 모임 '로보캅 폴리' 책을 통해 남편(?)과 아이의 세계가 확장되었다고 믿는다. 그나저나 나의 세계는 언제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