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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Feb 14. 2022

유방, 너는 자유다

브래지어 해방기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한 꿈에 의해 채식주의자가 된다.

주인공은 평소 소고기를 먹기 좋게 탁탁 썰어 버섯 등 채소를 둘둘 말아 맛있게 구워 내 남편의 저녁상에 올리는 고기 요리를 제법 잘하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새빨간 피가 뚝뚝 흐르는 고기를 야무지게 뜯어먹으며 빨개진 입으로 웃고 있는 야만적인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꿈을 꾸게 되고, 이어 어릴 적 아버지가 자신의 집 마당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귀여운 개를 몽둥이로 잡아 패 잡아먹던 기억과 오버랩되면서 주인공에게 육식이란 폭력과 공격의 상징이 되었고, 극단적인 채식주의자가 된다. 급기야는 아무 잘못 없는 식물을 먹는 것 까지도 잔인함으로 치부해 버려 물과 빛만으로 사는 나무가 되기를 희망하고 자신이 나무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강박과 정신분열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폭력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의 주인공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우리 신체 중에 타인을 해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는 유방이야. 나는 내 몸 중에 유방이 제일 좋아."  


팔과 다리, 사지로 상대방에게 얼마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세치 혀는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런데 가슴! 유방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회사 같은 부서에 친하게 지내던 한 명의 선배, 그리도 또 한 명의 후배가 있었다. 셋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함께 다녔다.  회사생활의 고충과 빌런 상사에 대한 험담도 마음껏 늘어놓으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풀리는 그런 소중한 관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셋째를 임신 중인 후배 한 명이 유두에서 피가 나온다고 한다. 임신 중에는 유선이 발달해 으레 있을 수 있는 일로 검사를 받아봐야 별일 없을 것이라며 선배와 나는 후배를 위로했지만 후배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휴직에 돌입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나처럼 술도 안 하는데  그것도 임신 중에 아니 왜! 머릿속에는 why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암보험이 없던 선배와 나는 암보험에 하나씩 가입했다.

그리고 다시 세 달 후 선배도 질병휴직에 들어간다고 한다. 사유는 유방암이란다. 정말 그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그것도 친한 선배 후배가 각각 모두 유방암이라니.


두 사람의 직계 가족 중 누구도 유방암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두 명 다 술. 담배도 안 한다. 자신들도 이유를 모르겠단다.

다만 스트레스일 것 같다는 추측만 남긴 채 떠났고 회사에는 나만 남게 되었다.


집에 와서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며 생각했다. 사춘기 시절에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 볼록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던 이 가슴! 유방이 부끄러워 큰 옷으로 가슴을 가리고 어깨를 움츠리고 다녔다.  

곧이어 브레이지어를 입기 시작하면서 가슴은 늘 답답했다.


20대가 되면서 가슴은 뭇 총각들이 탐하는 여성의 상징, 모두가 엄마를 추억하며 주물 락 거리며 만지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출산 후 가슴골은 불안을 잠재울 아기의 따뜻하고 편안한 안식처였고 퉁퉁하게 불은 젖은 아기의 밥통이 되었다. 오랫동안 유방을 점유했던 아기는 모유에서 우유로 우유에서 일반식으로 넘어가며 더 이상 엄마의 젖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도 찾지 않게 된 유방은 오랜 세월 받아온 중력의 무게로 늘어지고 이제 좀 쉬려나 했던 유방에 암이라니.  

유방에게 너무 가혹하다. 유방을 감싸 두는 브레이어 지어를 던지며 혼자 외쳤다.

"유방! 너는 이제 자유다"


나는 집에서도 그리고  집 근처 마트나 시장에 나갈 때도 브레이어를 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나의 유방 해방이 남들에게 큰 민망함을 주는지 묻자, 속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모르겠으며 40살이 된 아줌마의 가슴에 시선을 두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하니 걱정하지 말란다.

뭐지... 안도하면서도 불쾌한 이 기분.


항상 내어주기만 한 유방은 평화주의다. 고결한 희생과 생명, 엄마의 상징이다. 타인의 시선과 민망함은 번외로 하고 집에서만이라도 이제 자유를 주자.

"유방 너는 자유다"


유방!(아기 밥만 다 주고) 너는 자유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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