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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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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Dec 15. 2023

헌책방 기담 수집가- 책과 사람의 인연이야기

책과 사람은 연결되 있다

이 책은 나에게 

뜻밖의 인연 

뜻밖의 발견

뜻밖의 감동


사람은 습관화된 패턴대로 움직인다. 경험치와 노하우 신념에서 비롯된 선택을 하게 된다. 편협하고 얕은 지식만을 입력한 AI처럼 선택도 뻔히 예상되고 단조롭다. 


그래서 '뜻밖에'를 만나기가 어렵다 


나는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책을 고른다. 그중에서 소설과 자기 계발(심리) 관련한 책을 선택한다. 이런 지루하고 뻔한 선택을 하는 나에게 지인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이 책과 인연이 닿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추천과 권유를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책이 살이 있는 유기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은 아무도 몰래 은밀히 홀로 여행하는 존재 같다. 


헌책방에서 일하는 저자는 IT계열사 회사원이었지만 동네 헌책방이 좋아 헌책방에서 일하며 헌책을 찾는 사람들의 사연을 수집한다. 


책과 관련한 사연이 뭐가 그리 많겠지만 싶었는데 뜻밖에 잔잔한 감동의 사연, 웃픈 사연들이 상당히 많았다


총 28편여 정도의 사연들이 있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책과 사람의 사연을 살펴보면, 

*비가전하는 소식(권터 아이히) : 동성이 선물한 소중한 책. 동성에 대한 애정으로 갈등과 이별의 사연

*그 여인의 고백(슈테판 츠바이크) : 서로 짝사랑하는 마음을 숨긴 채 책의 결말로 다투다 이어진 사랑

*풀잎은 노래한다(도리스레싱) : 흑인이 짝사랑하는 농장의 여주인을 살해한 사건. 이 책을 읽다가 똑같은 사연을 가진 할머니를 만난 사연(할머니는 하인의 칼에 찔렸는데 사실은 하인과 외도 한다고 믿는 할머니 남편의 의부증 때문에 괴로워하는 할머니를 위해 할머니를 찌른 것)     

*바보들의 나라, 켈름(아이작바셰비스싱어) : 돌아가신 아버지가 읽어보라고 했는데 읽지 못한 죄책감을 찾는다는 사연. 

*철학입문(도날드 J) : 헬스맨 형과 학구파 동생의 갈등과 사연. 이 책을 통해 동생을 이해하려고 하는 형. 

*세상을 어둡게 보는 법(에밀시오랑) : 아들의 여자친구가 매사 부정적인 자신에게 권하여 건전한 고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책.

* 에덴동산(헤밍웨이) : 불운한 책도둑사연. 책을 훔치며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려던 사람의 사연

*도둑일기(장주네): 동묘 앞 책 찾기 시합


이밖에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실낙원>,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장자크 루소)>,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박완서)>, <콜렉터(존파울즈)>, <영자의 일생(기드모파상)> 등.


이 책을 읽고 나면 읽고 싶은 책이 수두룩 많이 진다. 갑자기 큰 과제를 받은 것 같다. 하지만 신나고 설레는 과제. 사연과 이야기가 있는 그림은 언제나 살아있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사연 있는 책들 또한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더해져 또 다른 의미와 감동을 가져다준다  


나에게도 사연이 있는 책이 있나. 곱씹어 보면 나는 책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기억만 있다. 저자는 '서삼치'라는 말이 있는데 책에 대한 세 가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했다.


첫째는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 둘째는 책을 빌려달라고 순순히 빌려주는 사람, 셋째는 빌려준 책을 돌려받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무려 후자 두 개가 해당된다. 그러므로 빌려준 책은 선물로 준 셈으로 치자. 그 편이 훨씬 속 편하다. 책이라는 것은 참 묘하다. 빌려 준 사람은 있는데 빌려간 사람은 없다. 


책을 빌려 줬다는 것은 그 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책을 빌려간 사람은 반드시 돌려주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암묵적인 합의라도 있는 것인가. 


아니면 대출기한에 딱히 제한이 없기에 책장 한켠에 걸려 '읽어야지'하고 쳐다보며 수년째 입맛만 다시고 있는 것인가. 


어쨌든 책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알고 있기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여행한다. 만나야 할 책은 만나진다. 


내가 빌려주었던 수많은 책들도 어디론가 여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만나야 할 사람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 


만나야 할 인연들은 다시 만나진다. 

너도 그렇고 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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