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
어둠을 가르며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소리의 서막이다. 물기를 빨아들이는 압지처럼 사이렌 소리가 빌딩숲 주변을 맴돌던 소음을 흡수해 버린다. 도시는 순식간에 사이렌 소리가 존재하는 곳과 사이렌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나뉜다. 사이렌의 울림은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다.
거리를 휘적휘적 헤쳐 나오는 사이렌 소리를 눈으로 살핀다. 마치 소리를 ‘보는 것’처럼 차창에 바싹 얼굴을 갖다 대기도 하고, 백미러로 후방을 주시하다가, 급히 달려오는 119 구급차를 발견한다. 나는 이런 경우에 갖게 되는 당혹감이 아니라 신중함을 가지고, 최대한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자동차를 한편으로 옮긴다.
다행이다. 이 순간만큼은 운전자들이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떨쳐버리고 이타심을 발현한다. 서둘러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만들어 준 다음,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다들 제 갈 길로 간다. 운전을 하면서도 마음은 온통 환자에게 쏠린다. 얼마나 위중한 상태일까, 환자는 의식이 있을까, 사위스러움이 내 머릿속을 온통 부유한다.
재작년, 스무 살 아들이 의무소방원으로 군에 입대했다. 선발 시험에 통과해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중앙소방학교에 입교를 했다.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시험을 치고 땀 흘리며 노력한 끝에 얻게 된 제복이라 그런지, 아들의 모습이 늠름하고 대견스러웠다. 강도 높은 교육을 마치고 무사히 수료식을 거쳐 소방서에 배치되었다.
아들이 소방서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그러자 내 온몸의 세포가 두 귀에 집중되어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소방차나 구급차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나의 신경줄이 팽팽해지며 아들에 대한 걱정이 배가되었다. 혹시나 아들도 화재 현장이나 산악 구조 현장에 출동을 나가지는 않았는지,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사명감과 책임감도 중요하지만 무사안일과 안전을 기원했다. 그렇게 소리는 내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공간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는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기도 했다. 휴가를 나온 아들이 소방 공무원들과 동행해 산불 현장에 갔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었다. 그즈음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내 눈앞에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 것만 같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또한 아들이 구급차를 타고 나갔다고 하면 죽음의 그늘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지역 특성상 노인들이 많이 계셔서 사고사보다는 심정지를 당하시는 분들이 많단다. 119에 접수된 응급환자의 심정지, 노인의 마지막 숨결을 손에 쥐며 슬픔에 잠겼을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인 나는 아들이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일상으로 접한다고 하니 가량없이 애가 탔다.
문득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옮겨졌던 친정아버지의 죽음이 떠올랐다. 지천명을 앞두고 친정아버지는 공무 수행을 떠난 길 위에서 빗길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부표도 없는 하늘 길이었다. 주소도 몰라 찾아갈 수도 없는 아득한 길을 아버지는 어찌 그리 급하게 가셨을까.
지금도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짓눌러지며 허망하기만 하다. 이렇듯 가족이나 일가친척의 죽음을 현실로 인정하는 것도 슬픔이 오랫동안 진행형이라 나는 고통스럽다. 그런데 타인의 주검 앞에서 아들은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근심스러웠다. 매일 쏟아져 내리는 아들에 대한 걱정이 내 온몸을 엎눌렀던 연유로 나는 답답증이 일었다.
아들은 처음에는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들이 마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같아서, 죽음 앞에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단다. 자신의 마음이 변하자, 임종을 대하는 태도에도 예의를 갖추게 되었다고 했다.
롤랑 바르트는 ‘애도하는 사람’만큼은 진짜 주체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은 타인이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들이 의무소방원으로서의 생활 속에서도 스스로의 본질을 찾는 과정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나는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다.
소방서에서 복무하는 동안, 아들은 젊음의 통과의례인 직업 선택에 있어 심사숙고했나 보다. 아들은 전역을 하고 나면 대학교를 휴학하고, 소방관이 되는 시험을 치고 싶다고 말했다. 소방관의 삶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과 희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나는 아들이 단순히 표면적으로 보이는 소방관의 세계가 아니라, 그 심연에 숨겨진 헌신의 강도를 깊이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번 구급차를 타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을 이송하는 일은 ‘살려야 한다.’는 중압감을 견뎌내야 하는 절박한 일임에랴.
아들은 결심을 굳힌 듯했다. 유려한 생활은 아니더라도 헌신을 바탕으로 하는 삶에 보람과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화재로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을 지켜본 사실과 생명에 촌각을 다투는 아픈 사람들을 지켜본 경험이 어우러져 이웃에 대한 책임감을 키우게 되었단다.
존엄한 생명을 다루는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엄마인 나에게 만연체로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자아(自我)를 찾아가는 길, 진로(進路)에 대해 신려하는 일은, 수많은 번민 속에 놓이는 것이지만,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아들이 어느새 인생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대답할 만큼 훌쩍 성장한 것 같아 느꺼웠다. 오늘도 아들은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생명의 소생을 곡진히 바라는 마음으로 출동하리라. 여느 때처럼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스스로의 삶을 견고하게 다지는 중일 것이다.
소방관의 삶은 끝없는 도전과 위험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의 헌신은 사이렌 소리가 전하는 희망과 함께 사람들에게 안전을 선사한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고난과 시련을 마주했을 때 현명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준다.
소리의 서막은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구급차는 병이 위중하여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라도, 살릴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사이렌을 울리며 최선을 다해 달린다. 소리에도 ‘경중’의 미덕이 있다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달려가는 사이렌 소리는 밀도가 높은 진중함으로 구현되는 것이리라.
나는 소리가 희망으로 귀결되기를 바란다. 사이렌 소리는 때때로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기도 하고, 미리 재난을 대비해 피난시키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이 겪는 삶의 어둠 속에서 우리를 빛의 길로 이끌기도 하고, 희망이 있는 구원의 길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내가 어느 순간, 소방관이 되고자 하는 아들의 바람에 걱정을 얹는 날이 오면, 사이렌 소리가 아들에 대한 내 믿음의 빛이 퇴색되지 않게 울려주기를 염원해 본다.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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