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문은 녹슬지 않는다

제6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by 정미영

세상으로 향한 모든 인생길의 시작과 끝은 문이 아닐까. 어머니의 자궁문을 열고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한평생 온갖 종류의 문을 여닫기 반복하다가 마침내 삶의 종착지에는 장례식장에서 생의 문을 닫는다.

인생 시계의 가을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지나왔던 무수한 문을 생각해 본다. 자동문처럼 쉽게 열린 적도 있었고, 굳게 닫힌 문을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겨 겨우 열던 때도 있었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건너왔던 문들은 모두 나의 내력을 지녔다. 가끔은 추억의 빗장을 열고 그 문들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가기도 하지만, 오늘은 차마 잊지 못하고 머뭇대며 찾아가기를 별렀던 문을 보러 길을 나선다.

산중턱에 대문을 품고 있는 집 한 채가 보인다. 굴곡진 우리네 삶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고즈넉하게 웅크리고 있는 아담한 집을 만날 수 있다. 세월에 부대끼고 풍상에 시달렸어도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한 권의 책으로, 집은 남아 있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학창 시절에 살았던 집 앞에 선다. 가을 햇볕에 물드는 단풍처럼 문간을 넘나드는 이들의 들숨과 날숨이 대문에 스며든 것만 같아 여기저기 시선을 옮겨본다. 내 눈길 끝에 예전의 문소리가 끼익 달려 나온다. 그 당시 우리 식구가 대문을 열고 닫을 때는 유달리 삐걱대는 소리가 잦았다. 친정아버지의 평온을 유지하지 못했던 마음이 대문에 옮겨져 그 아픔의 무게에 짓눌렸던 연유 때문인지 돌쩌귀가 빠져 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였다. 집안일을 돌보는 것보다 직장이나 친척들의 걱정거리에 앞장섰다. 아버지는 크든 작든 보증서는 일 또한 도맡다시피 했다. 그로 인해 몇 번의 큰 경제적 손실을 겪었지만 누군가 부탁을 하면 쉽게 거절을 못했다.

어느 해,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어릴 적 친구를 위해 또 보증을 섰다. 신발 가게를 몇 군데나 크게 하던 소꿉친구였다. 일이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잘못되었다. 그는 끝내 부도를 내고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이 사실을 들은 어머니가 수소문해서 신발 가게를 찾아갔다. 가게문은 비참하게 떨어져 나갔고 여기저기 몇 켤레의 신발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단다.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고 그즈음 힘들게 겨우 장만했던 집을 내놓을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자식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집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동안, 아버지의 직장 동료들은 우리 집 형편을 마음 아파했다. 그들의 배려 덕분에 관사로 거처를 옮겼다. 집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둔 한 권의 책이라면, 우리 가족은 또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글쓰기를 시작한 셈이었다.

아버지는 스스로를 구석자리로 내몰며 생채기를 냈다. 체질적으로 맞지 않던 술을 마시고는 피를 토하는 바람에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 갔고, 울분을 삭이지 못해 방구석에 누워 외출을 하지 않았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생긴 속상함이 아버지를 병나게 했으리라. 친구에 대한 원망을 마음 깊은 구석에 쟁여놓으니 심신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나왔다.

아버지가 빛바랜 문 앞에서 선뜻 집으로 들어오지 못한 적이 많았던 때문이었을까. 아버지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한다고 문고리를 붙잡고 미안해할수록 철문은 무시로 아버지의 울분을 받아들였나 보다. 문은 군데군데 녹이 슬고 주저앉을 것처럼 점차 위태롭게 보였다. 낡을 대로 낡은 문은 바람만 불어도 쩔걱거리며 사위스러운 소리를 냈다. 삭막한 아버지의 흐느낌과 문의 차가운 금속성 소리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 내 불안은 커져만 갔다. 내 가슴에도 붉은 녹과 쇳소리가 선명하게 새겨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런데 걱정의 종말이 보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파란 페인트를 사가지고 왔다. 칠을 하기 전에 철재 문짝을 뜯어 돌쩌귀를 새로 갈고 녹슨 부분은 사포로 긁어냈다. 그런 다음 페인트에 시너를 적당히 섞어 롤러와 페인트 붓으로 칠했다. 비지땀을 흘리며 문고리와 문설주의 돌쩌귀까지 세심하게 덧칠했다. 문은 가을 하늘의 일부를 옮겨 놓은 듯했다. 아버지가 문을 페인트로 단장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몰아치는 늦가을 들판처럼, 무성한 마른 풀로 버석거렸을 아버지의 가슴에 새롭게 푸른 물이 돌았을 것이다. 생기가 돋아나는가 싶더니, 활기가 넘치는 날도 점차 늘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사람에게서 받은 상심과 삶의 고단함을 페인트칠하면서 부려놓으려 애썼던 것 같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문도 상처를 방치하면 안 된다. 아버지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데 힘썼듯이 내세울 것 없던 허름한 문도 녹슨 곳을 사포로 정성껏 문질러 매끈하게 만들자, 공간의 소중한 일부로 재탄생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때의 경험을 발맘발맘 따라왔더니, 가끔 생활에 드리워진 어둠이 걷어지고 환한 희망의 등불 하나 소담스럽게 문에 내걸 수 있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비워줘야 했다. 아버지는 공무수행을 떠난 길 위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 안내판에 쓰인 망자의 이름이 낯설었다. 내 아버지지만, 더는 부를 수 없는, 손을 내밀어도 잡을 수 없는 공허감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영정사진을 쳐다보면 짙은 슬픔의 농도로 무거워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은 내 상견례 날이었다. 양가 부모님들께서 결혼식 날짜를 한 달 뒤로 정했다. 혼인 날짜를 잡자마자 다음 날 운명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날짜를 한참 뒤로 미루었다면 아버지가 좀 더 오래 생존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부재는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할수록 죽음은 더욱 뚜렷해졌다.

발인하는 날, 장례식장 문을 나서서 선산이 있는 고향 마을에 도착했다.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요령잡이가 요령을 흔들어 내는 소리에 맞추어 장지로 향했다. 구슬픈 가락을 따라 베옷 차림의 상주들과 일가친척, 마을 사람들 행렬이 휘청휘청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동행했다. 하관 후 상여꾼들이 무덤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회다짐할 때에는 상주들의 곡(哭)소리가 만장처럼 길어졌다. 아버지 떠나시는 길에 내가 더 울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목이 쉴 정도로 통곡했다.

구석기 시대에는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동굴 입구를 무거운 돌로 막아놓았다고 한다. 앙칼진 동물과 비바람으로부터 사람을 수호했던 바위가 이제는 문으로 바뀐 셈이다. 가량없이 날선 세상에서 가족들을 지키려고 했던 아버지는 나에게 문(門)이었다. 그 시절, 아버지의 등에는 내 친할머니와 고모를 포함한 대식구의 쥐코밥상이 달려 있었다. 책임감이 강해 모진 삶에게 결코 문을 활짝 열어주지 않았고 굴복하지 않았다. 버거운 등짐을 내려놓고 싶은 매 순간마다 식구들을 보며 인생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도 언젠가는 활짝 웃는 날이 오겠지, 꿈꾸었으리라.

대문을 쓰다듬어 본다. 삶이 버거울 때 비바람 막아주고 등을 기댈 수 있었던 문(門)과의 추억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제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 푸른 문으로 각인되어 있다. 내가 그리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형상은 오롯이 기억될 것이다.

더 이상 문은 녹슬지 않는다.


제6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주관: 경북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