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상작
지난 주말, 고향집을 찾아갔다. 바람벽을 보니 마른 땅바닥처럼 여기저기 갈라져 틈이 많았다. 고르지 못한 벽을 손으로 훑는데, 이제 곧 텃밭에 씨뿌리기가 코앞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빠지기 전에 매흙질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매흙질은 벽이나 부뚜막, 안마당에 매흙을 바르는 일을 말한다. 산비탈에서 퍼온 백토를 커다란 대야에 담고 물을 부어 흙탕물을 만든다. 그 물을 다른 그릇에 담고 하루를 재우면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데, 마치 흐트러진 상념이 가슴 밑바닥에 침잠하듯이 내려앉는다.
오늘은 매흙을 미리 만들어 놓았기에, 귀얄로 바르면 된다. 일하는 틈틈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다른 집에 비해 자주 매흙질을 했다. 매흙질을 거치고 나면 흙벽은 매끄러웠다. 시커멓게 그을음 묻은 부뚜막도 화장을 한 새색시처럼 새 단장을 했다.
아버지는 내 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맥질하는 법을 배웠다. 할아버지는 영천 도동, 고향집 가마 옆에서 옹기를 구우며 살았다. 생계를 위해 옹기를 빚어 팔았지만 사람들은 차츰 멀리했다. 공장에서 만든 알록달록하고 가벼운 플라스틱 그릇에 점점 마음을 빼앗겼다. 장인 정신을 가지고 땀 흘리며 그릇을 빚어도 생활그릇이 옹기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는 세태를 따라가지 못해 가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친척 아재나 사촌들도 점차 다른 일을 구해 고향을 떠났다.
아버지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과 바깥 세계 사이의 경계에서 방황했다. 도회지에서 불어오는 산업화 바람에 마음이 동하기 일쑤였다. 가마 앞에서 노심초사하는 할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와 야윈 등을 보면 안쓰러울 때보다 답답할 때가 많았다. 애면글면, 그 정성을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어느 날, 아버지는 옹기 굽는 일 대신 다른 직장을 핑계 삼아 대도시로 내달렸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며, 가족들을 건사할 방 한 칸을 얻기 위해 매일 옷에 허연 소금꽃이 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가장의 무게가 묵중할수록 하루하루가 고단했기에 몸이 견디지 못했다.
한참을 앓고 난 그 해 가을,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시골집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는 명절을 앞두고 매흙질하는 법을 익혔다. 할아버지가 일하는 것을 자연스레 거들면서 배우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귀얄을 잡은 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차츰 손에 익었다.
매흙질은 아버지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이었다. 일에 집중하는 동안 상념을 잊었다고 했다. 시커먼 부뚜막이 마치 아버지의 상처 난 마음인 듯 여러 겹 두껍게 덮었다. 허물어진 벽이 마치 아버지의 어지러운 생활을 닮은 듯 거침없이 덧칠했다. 어쩌면 가족의 건강과 새로운 삶의 희망을 덧입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성싶다. 빛바래고 한쪽 귀퉁이 떨어진 삶이라도 매흙질하듯 정성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매끄러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겠지. 예전에 아버지의 손길이 지나다녔던 자리를 더듬어 찾듯 찬찬히 맥질한다. 갈라진 틈을 메우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주는 번민을 꼼꼼히 부려놓는다.
몇 년 전, 건강하다고 믿었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심장이 멈춰 응급실에 실려간 뒤, 두 차례 심장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퇴원했지만, 그 때부터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평온을 유지하지 못했다. 직장일과 집안일, 어린 삼 남매 키우는 것이 힘에 부치는 때가 많았다. 여러 해 동안 몸과 마음이 시달린 연유로 내 마음 벽에는 끊임없이 거칠고 뾰족한 선들이 돋아났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자를 대고 줄을 그어 매끄러운 선을 만들어 놓아도 수시로 삐뚤어지고 굽었다.
그러나 내 옆에 남편이 있어 감사하다. 둘이 함께 거친 인생의 흔적을 매흙질할 수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오늘도 고향집 구석구석을 매흙질하면서 튀어나온 직선과 끊어진 사선 같은 내 마음을 남편과 달래고 보듬는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축 처져 있던 어깨가 곧게 펴진다. 기진맥진한 내 생활의 흔적에도 그늘이 걷히고 햇살이 드리워지는 것 같아 귀얄 잡은 손놀림이 가볍다. 덧칠을 반복하는 동안, 앞으로 펼쳐질 내 삶도 단장한 바람벽처럼 모난 데 없기를 기원한다.
매흙질한 집은 아버지에게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처소였으리라. 흙마당 귀퉁이 장독대에 어깨를 겯고 있는 옹기들이 늘어서 있고, 처마 끝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대글대글한 감을 꼬챙이에 꿰어 늘어뜨린 풍경이 있어 더욱 정겨운 곳이었을 것이다.
초록 바람이 불어온다. 매흙질한 자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려주겠지. 아버지가 매흙질을 마친 뒤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운 추억이 고향집 언저리를 맴돌다가 서서히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상작 (주최:경북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