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오르는 여자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

by 정미영

봄비가 겨우내 얼었던 아파트 단지를 역동적인 빗물체로 풀어헤친다. 빗방울이 굼뜨게 내리는 틈을 타 집을 나선다. 퇴원한 후, 회복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누워 지내는 것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33층에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한참이나 기다린다. 무리한 운동보다는 걷기부터 시작해야지.

동 입구에 다다른다. 그칠 줄 알았던 빗줄기가 더 굵어져 땅 위로 곤두박질을 거듭하고 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나왔는데 집으로 돌아가려니 아쉽다. 그 순간 열린 비상문 사이로 계단이 보인다. 16층에 있는 나의 집으로 이어진 길을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밟는다. 신음을 토하고 숨 고르기를 반복했지만 계단 오르기를 멈출 수는 없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에 <계단을 오르는 여인>이 있다. 고흐의 그림은 개성적인 화풍과 감정적 표현력으로 유명하며, 이 작품 역시 감성적이다. 여인이 오르는 계단을 통해 삶의 여정과 노력, 끊임없는 도전과 성장을 담아내고 내면적인 탐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인간의 삶과 내면적 갈등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나는 오늘, 마치 고흐 그림의 모델이 된 듯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내 삶의 여정을 나타내며, 오르는 과정은 인생을 건너가는 나의 노력과 도전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계단 위에는 환한 빛이 두 팔 벌려 기다릴 수도 있고 짙은 어둠이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오르리라.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나를 다독여 한 발짝 한 발짝 딛고 올라가야만 한다.

남편이 심장 시술을 하며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던 적이 있었다. 심장이 멈춰 응급실에 실려 간 뒤, 두 차례 심장 시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퇴원했지만, 그 때부터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평온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 즈음 나는 수필가로 등단을 했고 논술 선생님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몸져누운 남편을 바라본 뒤, 집에 있는 컴퓨터로 ‘논술생 모집’이라는 광고 전단지를 만들었다. 나에게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대용량 프린트기를 구입해서는 용지를 출력했다. 그러고는 어린 두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몇 날 며칠 계단을 오르내리며 전단지를 1500세대 현관문에 일일이 붙였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요령이 없던 탓에 다리가 붓고 팔이 무척이나 아팠다. 운동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던 내가 스스로를 다독였다. 계단을 오르내리면 운동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사실은 한 푼이라도 돈을 절약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어렵고 힘든 순간이었다. 계단은 내가 성장하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의 용기와 의지를 자주 시험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여기, 계단 위가 맞는지, 현실적으로 자각할 때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고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찾아들었다.

한번은 복도 창문으로 감빛 노을이 번지는 것이 보일 때가 있었다. 그 순간, 따뜻한 저녁밥을 해놓고 아이들을 기다려야 하는 시각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더욱 급해져서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다녔다. 눈앞에 펼쳐진 계단은 나에게 긴 여정을 거쳐야만 휴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져 때론 두려웠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남편과 두 아들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러 보았다. 가족은 항상 내 곁에서 위안을 주는 존재고 나를 앞으로 계속 걸어가라고 힘이 되어 주었다. 가족의 사랑은 마치 그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넘어지지 않게 나를 비춰주던 빛과 같았다. 그 빛을 따라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며 성장시키는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여정의 막바지에는 가족의 사랑이 깃든 따뜻하고 안정감을 주는 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전단지를 붙인 것은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자 용기의 발현이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이전에 전업주부로서 살던 내가 더 이상 아니었다. 한 명의 학생과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생님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드디어 시작했다.

또한 수필을 쓰는 나에게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다. 나는 남편을 집에 두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순간마다 글감을 찾기에 분주했다. 때때로 계단의 높고 낮음이 삶의 다양성인 것 같기도 하고, 각 층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전단지가 약한 바람이나 충격에 떨어질 것만 같아 꾹꾹 눌러 붙이는 과정에서, 덩달아 내 인생의 꿈이 깨지지 말라고 결의를 불어 넣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수필을 쓰는데 영감이 되기도 했다. 계단을 오르는 발길에 감정을 담기도 하고 전단지를 붙이는 손길에 사유를 담기도 했다. 글을 통해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어가려는 용기와 신념을 다시금 확인하기도 하고, 자아를 사랑하는 방법과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가족의 무한한 지지와 내 자존감을 세워주려는 배려가 느껴졌다.

나는 지금, 쉬엄쉬엄 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다양한 형상의 계단을 무수히 마주할 것이다. 그 가파른 여정은 끝이 없겠지만 어려움과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나 자신이 허방을 딛지 않도록 서두르지 말고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가야겠다.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