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림도 없었다

제8회 가족사랑수기공모전 수상작(원제:어머니의 사랑, 골무에 수놓아지다)

by 정미영

골무를 들여다본다. 비단에 수놓은 모란과 박쥐, 길상문이 곱디곱다. 자수 골무는 내가 결혼할 때 친정에서 나를 따라온 혼수품이다. 어머니가 직접 색색의 비단 조각을 맞대어 솔기를 촘촘히 감쳐 만들었다. 세월 따라 마모되기는 했지만 한 땀 한 땀 바느질 속에 녹아든 자애의 부피는 줄어들지 않는다. 시집가는 딸에게 당부해 주고 싶은 말과 잘 살라는 격려의 말이 골무 위에 여러 문양으로 응축되어 있다.

친정어머니의 적막한 밤은 침낭에서 바늘을 꺼내 골무를 만드는 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월남전에 자원하신 뒤, 홀로 만삭의 몸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어머니였다. 매 순간 엄습해 오는 전쟁터에 대한 두려움과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천 자락에 넣고 바느질했다.

어머니가 바느질하는 순간은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이었다. 접지를 골무 크기대로 잘라 붙이고 수놓은 원단을 다시 크기대로 잘라, 아래 부분과 곡선 부분에 바이어스 처리를 해서 한쪽 면을 완성했다. 두 개씩 짝지어 고정한 곳에 사뜨기로 예쁘게 장식하거나 얇은 색 헝겊을 두르면서 시름을 덜었다. 바느질하는데 온 신경을 모으는 동안, 머릿속을 부유하며 떠돌던 걱정이 잠시나마 잊혔으리라. 삭이지 못한 아픔과 버리지 못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교직(交織)으로 박음질하면서 또 다른 인생의 꿈을 계획했는지도 모른다.

걱정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렇다면 위로받을 수 있는 자신만의 치유 방법이 있다는 것은 삶을 지탱하는 지혜가 아닌가. 어머니 또한 마음속에 포말처럼 이는 검푸른 회한을 천 조각에 올올이 드리우고, 자신의 찢어진 상처 조각까지 보태어 촘촘히 기워 보듬었다.

반달처럼 생긴 골무를 만드는 일은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어머니의 기원이 담긴 골무가 반짇고리 가득 차고 넘쳤을 즈음, 아버지가 무사히 귀국했다. 그후로도 어머니의 골무 만들기는 계속 이어졌다. 밤이면 습관처럼 천 귀퉁이를 잡아당기며 수놓았던 일상이 쉽게 멈추지 않았던 탓이었다.

정체되지 않는 시간의 곡선을 따라 수많은 밤이 지나갔다. 어느덧 나도 예전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보니 아내와 엄마라는 사람은 늘 걱정을 머리에 이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크고 작은 걱정거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밖에서 수시로 찾아드는 고민도 있지만, 내 안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고민에 마음을 날카롭게 베일 때도 많다. 이런저런 고민이 해결되면 앞으로 내 삶에 걱정이라는 단어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림도 없었다. 한순간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겨워 기뻐하고 있으면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는 무기력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맥없이 널브러질 때가 많았다. 믿었던 이에게 상처받았던 일은 인생의 허허로움과 배신감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세상이라는 바다는 걱정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또 다른 근심이 달려들었다. 파도에 등을 떠밀리듯 떠내려가면서 군데군데 긁혀서 생긴 생채기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곳을 베이기 일쑤였다.

어느 날, 손을 내밀어도 잡아 주지 않는 희망 때문에 밤잠을 설칠 때였다. 잠자리에 누워 있다가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이불을 개키고 일어났다. 그때 어머니의 골무가 생각났다. 골무에는 다양한 무늬가 있었다. 어머니는 민화나 베갯잇처럼 자식의 성공과 건강을 바라는 문양을 정성껏 수놓았다. 그렇게 수 세기 동안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이 할머니를 거쳐 어머니에게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달밤에 자투리 천을 부여잡고 고요히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악기를 연주하듯 리드미컬하게 천을 이어가던 어머니의 손길 위에서 골무가 완성되던 것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장롱문을 열고 반짇고리를 꺼내 들고는 바늘귀에 실을 꿰었다. 솔기 터진 것처럼 찢어진 일상을 곧추세우기 위해 자투리 천을 찾아 바느질했다.

근심의 경계가 희미해져 갔다. 자잘한 생각이 끼어들 틈바구니가 없었기에 점점 마음이 편안했다. 홈질하고 공그르기를 하다 보니, 헝클어졌던 생각이 정리되었다. 어찌 보면 내 앞에 놓인 걱정의 시작은 아집과 욕심 때문인 것 같았다.

걱정을 내려놓자고 다짐했다. 반세기를 살아온 내게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짧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절망하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은 인생이지만, 모나면 모난 대로 해지면 해진 대로 바느질해서 잇다 보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인생 조각보 하나쯤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왕이면 걱정하는 순간에 어머니처럼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리라.

낡고 해져도 골무에 수놓아진 어머니의 말은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쇠약하신 노모의 내리사랑 또한 세월의 더께가 제아무리 두터워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제8회 가족사랑 수기공모전 수상작 (주최:이지웰가족복지재단, 후원:여성가족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