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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난 눈사람

12월 2일 에세이

by Mario

나는 어릴 적에 있었던 소소한 추억들을 많이 잊지 않고 있는 편이다. 한 동안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했던 날씨가 추워지니 문득 생각이 났던 유년기의 기억을 하나 꺼내오고자 한다.


정확히 몇 년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사를 많이 다녔던 우리 집의 상황을 고려할 때 초등학교 시절의 일임은 확실하다. 초등학교 때 내가 살던 곳은 1분 거리에 작은 약수터가 있었다. 산 밑이기 때문이었는데 흔히 생각하는 깊은 산골까지는 아니었다. 약수터의 이름은 '독샘'이었다. 산부터 내려오는 지역이다 보니, 마을이 모두 비탈길로 되어 있었고, 집들은 마치 계단식 논처럼 지어져 있었다.


그 날은 매우 추운 날이었다. 난 나보다 3살이 어린 여동생과 함께 밖을 나갔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눈이 내렸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눈이 쌓이자 동생과 나는 눈사람을 만들었다.


위에서부터 조그만 눈 뭉치를 굴리자 금세 큰 덩어리로 변했다. 동생과 나는 그 추운 날 땀을 흘렸던 기억이 날 정도이니 당시 얼마나 즐겁게 눈사람을 만들었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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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이 지나 동생과 나는 큰 눈 사람을 완성시켰다. 나름 나뭇가지로 팔도 만들어주고, 눈과 코도 달아주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아주 크고 뚱뚱한 올라프를 만든 셈이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서 밥도 먹고, 쉬다가 오후 늦게 다시 나왔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 사람에 구멍이 뚫려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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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 개가 아니었다. 머리부터 몸통까지 수십 군데의 구멍이 나 있었다. 오히려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눈사람 옆에 얇고 긴 회색 PVC 파이프가 놓여 있는 걸로 봐서는 그것으로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았다. 동네에는 좀 성격이 안 좋아 보이는 두세 살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의 소행으로 짐작되었다.


몇 시간이나 고생해서 만든 눈사람이 한순간에 처참하게 변했던 기억은 지금도 쉽사리 잊히지가 않는다.


저번 주 주말 가족들을 보기 위해 고향을 갔었다. 고향에 도착한 지 채 2시간이 되기 전에 올해 첫눈을 보게 됐다. 동생과 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해버렸다.


이젠 눈도 싫더라. 녹으면 너무 지저분해지고, 올 때도 별로고...


말을 한 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눈 하나에도 즐겁고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아마도 그때의 눈사람에 구멍을 낸 사람은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은 어른이 된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이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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