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산들 Feb 05. 2020

나는 5만 원짜리 친구인가 10만 원짜리 친구인가

축의금의 기브 앤 테이크

[사진출처:unsplash@dreamcraftlove]


정신없었던 결혼식이 끝나고 아버지께서  편지봉투 하나를 건네주셨다. 처음에 나는 ‘아버지께서 친필 편지를 써주셨나?’하고 감동받을 뻔했지만 알고 보니 이름과 금액이 적힌 축의금 명단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나중에 실수하는 일 없도록 잘 보관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물론 실수라는 건 내가 받은 것보다 축의금을 덜 한다는 뜻이다.)


세상 물정 몰랐던 나는 좀 놀랐다. ‘어렴풋이 머리로만 기억하는 건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관리하는구나. 그것도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주실 정도로 중요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알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받은 축의금뿐 아니라 본인이 '뿌린' 축의금까지 적어서 관리하고 있었다.



예민한 문제인 축의금


얼마 전 브런치에 ‘먼저 연락 잘 안 하는 사람’이란 글에 한 친구와의 얘기를 적었다. ‘친한 친구였는데 내가 결혼식에 가지 못해 미안했고 미안한 마음에 줄곧 연락하지 못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후에 관계를 이어 가고 싶어 내가 먼저 연락해서 만나게 되었고, 친구는 내 결혼 소식을 듣고 나에게 10만 원을 건네줬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어떤 분께서 ‘님은 안 준 축의금 그냥 받았어요? 뻔뻔한 양반이네요.’라고 댓글을 남겨 주셨다. 나는 그저 저 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한 것에 중점을 두고 글을 썼지만 그분은 '당신은 축의금을 줬나요? 안 줬나요?’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결혼식에는 안 갔지만 다른 친구를 통해 10만 원을 축의금으로 보냈었다. 만약 내가 축의금을 주지 않고 받기만 했더라면 많은 분들이 저렇게 심기가 불편하셨을까? 악플 청정지대라고 생각했던 브런치에서 악플 공격을 받으니 머리가 띵했다. 역시 축의금은 굉장히 예민한 문제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기브 앤 테이크가 진리일까?


한 대학교 친구는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이렇게 얘기했다. "친구 A가 내 결혼식 때 축의금 50만 원 했더라고. 나 진짜 감동받았잖아." 사실 나는 10만 원만 했기 때문에 민망하기도 했고 50만 원이라는 숫자에 적잖이 놀랐다. 직장인에게 50만 원은 상당히 부담되는 금액인데 그 정도로 큰 금액을 축의금으로 하다니.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30만 원 이상의 금액을 축의금으로 내고 있었고 이들의 생각은 대부분 비슷했다. '친한 사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나중에 동일한 금액의 축의금을 받아야겠다'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기브 앤 테이크의 법칙 때문에 상처 받고 실망했다. "저는 혼자 가서 20만 원 했는데 친구는 여자 친구랑 같이 와서 20만 원 했더라고요. 당연히 25만 원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20만 원 했는데 친구는 제 결혼식 때 15만 원만 해서 너무 실망했습니다." 등등이다. 마치 연인들이 커플링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친구들은 서로의 우정을 축의금의 액수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축의금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건 아닐까?



우정의 깊이도 돈으로 평가받는 세상


가끔 인터넷에서 적당한 축의금이 5만 원인지 아니면 10만 원인지 물어보는 글들을 보게 된다. 그러자 어떤 분은 “친구의 부모님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면 10만 원 해야 하고 아니라면 5만 원이 적당합니다.”라고 아주 자신감 넘치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다. 나는 저 글을 읽고 헛웃음이 났다.


부모님이 모르신다고 해서 우정의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니고 30대면 친구 사이에도 경제력의 차이가 확 나기 때문에 같은 금액의 돈이라고 해도 부담이 다르다. 축의금의 액수로 그 사람의 우정을 평가해야 한다면 ‘월급의 몇 %’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가 주는 5만 원과 부모님이 건물주라 월세 받으며 사는 친구가 주는 10만 원 중에 어떤 게 더 소중한 축의금일까?


사실 아버지가 주신 축의금 명단은 한 번만 보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금액을 볼 때마다 ‘이 친구는 5만 원, 이 친구는 10만 원’ 이런 식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실수한 적은 없을 것이다. 우선 비즈니스 관계인 분들은 내가 따로 명단을 만들어 두었고, 내 결혼식 이후 친구들에게는 대부분 10만 원 이상을 했으니까. 혹시라도 내 친구 중에 우정의 깊이를 축의금으로 평가하는 친구가 있다면 5만 원짜리 친구로 남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정말 우정의 깊이와 축의금의 액수가 비례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우정? 웃기지 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얼마면 돼?’


작가의 이전글 20년 만에 가본 모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