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그곳에 남아 있었다.
갑자기 졸업한 고등학교에 가보고 싶어 졌다. 생각해 보니 지난 20년 동안 지하철을 타고 그 동네를 수없이 지나갔지만 한 번도 역에서 내려서 학교를 본 적은 없었다. 왜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안 가봤던 것일까? 어쩌면 고등학생 시절이 너무 그리워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운 마음 때문에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종무식을 하고 한가로운 12월 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시간을 내서 고등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20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처럼 오늘이 아니면 앞으로 또 20년 동안은 갈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 한 권을 들고 지하철을 탔다. ‘옛날에 자주 가던 가게들이 남아 있을까?’, ‘어떻게 변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니 이미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결국 책은 꺼내지도 않았다.) 역에서 내리자 익숙한 타일 컬러가 나를 반겼다. 20년 만에 왔지만 학교로 가는 출구가 어느 쪽인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하철역을 나와 학교로 걸어가면서 과거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등교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언덕길을 오르던 일, 친구 종찬이가 장난치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일, 수업 끝나고 친구들과 햄버거 사 먹으러 가던 소소한 일상 등.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예전의 흔적들은 많이 사라졌지만 내 추억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
학교는 놀라울 정도로 20년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20년 전에는 새 건물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보수가 필요 없어서였는지 교문, 학교 건물, 운동장 모두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혹시 많이 바뀌어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줘서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학교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 건물 이곳저곳을 찍고 나서 교문을 찍기 위해 길 건너편으로 갔다. 교문을 보고 있으니 20년 전의 꿈 많고 수줍음 많던 교복 입은 고등학생인 내가 걸어 나올 것만 같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