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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의 일이다. 신문 사이에 끼어 있던 'TV 파격 세일 00 만원'이라는 전단지를 보고 온 가족이 오픈 시간에 맞춰 하이마트에 갔다. 전단지에는 한정수량이라는 문구가 없었으나, 실제로는 하루에 5명에게만 판매하는 상품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줄을 서다 그대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직원분에게 전단지에 한정수량이라는 문구가 없다는 얘기를 했지만, 직원분은 귀찮다는듯이 아버지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아 다 팔렸다구요. 돌아가세요.” 라는 말만 했다. 나와 어머니가 포기하고 자동차로 돌아가려는 그때 아버지의 고성이 들렸다.
"아니. 전단지 어디에 한정수량이라는 말이 쓰여있어요? 여기가 무슨 동네 구멍가게예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과묵하고 차분한 아버지였기에 그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신 말고 여기 책임자 불러요.”
책임자가 나오자 아버지의 말은 계속되었다.
"아침부터 고객을 불러 놓고 이래도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사람 포인트 카드 긁어봐요. 우리가 여기서 산 게 얼마인데 이렇게 고객을 응대해요?"
결국 책임자는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했고 아버지는 전단지에 나온 가격으로 TV를 구매하셨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무척이나 슬퍼졌다. 왜냐면 그동안 아버지가 '을'로 살아오면서 '갑'으로부터 당했던 한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은행원으로 근무하셨고, 늘 실적과 명예퇴직의 압박에 시달리셨다. 평일에도 함께 저녁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항상 늦게 퇴근하셨고 주말에도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베란다로 나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셨다. 아버지가 하이마트에서 내뱉은 저 말들은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수없이 고객들로부터 들었던 말일 것이다.
'아니 OO은행이 무슨 동네 구멍가게야? 왜 저번하고 말이 달라. 여기 지점장 나오라고 해. 당신 내 통장 한 번 봐봐. 내가 이 은행에 적금한 금액이 얼마인데 나한테 이래?' 등등. 과묵한 아버지는 나에게 회사 일에 관해서는 거의 얘기를 안 하셨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지금까지 얼마나 고된 회사생활을 하셨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가 은행원에 잘 맞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었고 은행원이 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외국어 공부를 해서 해외근무도 하고 해외출장을 다니는 직장을 갖기를 원하셨다. 국내지점에서 평생 같은 업무를 하셨던 아버지는 해외로 출장도 나가고 해외 비즈니스를 하는 친구들이 부러우셨던 모양이다.
결국 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해외 파견업무와 해외출장을 다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에 퇴직하셨고 지금은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계신다. 지난번 베트남 출장 가서 사 온 커피를 아버지에게 선물로 드렸는데, 아버지는 사무실에 가져가서 직원들과 나누어 드셨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본인이 동경했던 해외출장을 다니는 아들 자랑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잘난 아들도 아니고 내가 사드린 베트남 커피는 이마트나 편의점에 가도 쉽게 살 수 있는 싸구려 커피지만, 내 선물로 인해 아버지가 행복해하시고 또 자랑스러운 아들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우리 가족이 그 TV를 구매한지도 어느덧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본가에 가서 그 TV를 볼 때마다 그때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직 그때 일을 기억하고 계실까? 언젠간 기회가 되면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그 TV 사건 덕분에 아버지의 고충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늘 존경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