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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Jun 24. 2020

내가 20대에 유럽여행을 가지 않은 이유

시간과 돈 중에 어떤 게 더 소중할까

[이미지 출처: unsplash@biancablah]


"제가 20대에 유럽 여행 갔으면 재미있었을까요?"


아직 유럽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서른 중반의 회사 동료가 물었다. 그분은 학생 때는 여유가 없었고 취직 후에는 돈을 모으느라 유럽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7년간 옆에서 봐온 그분은 검소한 타입으로 허투루 돈을 쓰는 경우가 없었고, 늘 계획된 지출만 하고 돈을 차곡차곡 잘 모았다. 얼마 전 들은 얘기로는 사회생활 10년 동안 본인이 목표한 금액을 모았다고 했다. 하지만 “제가 20대에 유럽여행을 갔으면 재미있었을까요?”라는 질문에서 저축을 하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한 20대에 대한 미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 또한 20대에 유럽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여행 경비 (15년 전 기준입니다)가 너무 부담되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여행 다녀온 친구들이 제대로 된 레스토랑도 못 가고 빵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얘기를 듣고는 차라리 나중에 직장인이 되어 여유롭게 여행을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학생 때는 유럽여행을 가지 않고 학원을 다니며 방학을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알쓸신잡3 피렌체 편에서 김영하 작가의 얘기를 듣고 그동안 나의 선택에 후회가 밀려왔다.

 도시는 거의 변한  없어요. 저만 변해요. 대학교를 졸업한 배낭여행자이다가 신인 소설가도 됐다가  어느새 중년 남자가 됐다가. 자기만 변하니까  변화를 느낄  있어요.  자리에 있다는  굉장히 반가워요. 고맙고.
[사진출처: tvN 알쓸신잡3 피렌체]

김영하 작가는 20대에 처음 피렌체를 간 이후로 피렌체만 10번을 넘게 다녀왔고, 갈 때마다 매번 다른 느낌과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아 김영하 작가가 20대에 피렌체에 가서 느꼈던 감정을 30대가 된 나는 느끼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20대에는 무척이나 피렌체에 가고 싶었다. 군대에서 내무반 책꽂이에 꽂혀 있던 로열블루 컬러의 냉정과 열정 사이 책을 읽고 그 소설에 흠뻑 빠져버렸다. 휴가 나오자마자 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를 찾아봤고, 그 이후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 OST를 듣는 것이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전역 후, 바로 전공 공부와 취업준비라는 현실에 부딪혔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만 했다.


그렇게 전공 수업에 매달리고 취업준비를 하다 보니 나의 20대는 훌쩍 지나갔다. 취업을 하고 정신없이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피렌체는 점점 잊혀 갔고, 책꽂이에는 냉정과 열정사이 blu와 rosso 책 대신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그릿', '기적의 사과'와 같은 자기 계발서 수십 권만 꽂혀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코로나가 종식되면 피렌체로 여행을 갈 수 있을 것이고, 20대의 김영하 작가가 배낭여행자 시절 빵으로 끼니를 때웠던 것과는 달리 직장인이 된 나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것이다. 하지만 20대의 내가 느꼈을 설렘을 지금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두오모에 올라간다고 해도 냉정과 열정 사이 책과 영화에 빠져 살았던 20대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 시간과 돈 중에 어떤 게 더 소중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시간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리고 지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미루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나 역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면서 살아왔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서른 후반에 깨닫게 되었다. 만약 내가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과거의 나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면 피렌체 여행을 버킷리스트로만 남겨 둔 20대의 나에게 'STAY' 대신 'DO'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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