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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Jun 16. 2020

적당한 마음의 거리

[이미지 출처: unsplash@picsbyjameslee]


대학교 3학년 때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우리 과에서는 총 5명이 뽑혔는데 그중 여자 후배 2명은 베프 사이였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도 둘은 항상 붙어 다녔는데, 간혹 후배 A가 혼자 있을 때면 모두들 "B는 어디 갔어?"라고 묻고, 후배 B가 혼자 있을 때면 다들 "A는 학교 안 왔어?”라고 물을 정도였다.


출국날 인천공항에서 만난 후배 A와 B는 앞으로 펼쳐질 유학생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무척 들떠 보였다. 공항에는 후배 A와 B의 부모님도 계셨는데, 둘은 서로의 부모님과도 친해 보였다. 아마도 집에 놀러 간 적이 있거나 밖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는 듯했다. 나와 친한 동기들은 아직 복학 전이거나 한국에 남았기 때문에 해외에서 서로 의지할 친구가 있는 후배 A와 B가 무척 부러웠다. 그렇게 나는 걱정과 설레는 마음으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 도착 후 학교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기숙사 방을 배정받았다. 기숙사는 2인 1실이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남자는 나 혼자였기에 중국 학교에서 배정해준 대로 한국인 형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기숙사 방은 침대와 책상이 두 개씩 있고 개인적인 공간은 전혀 없었다. 방에 있는 시간 동안은 공부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모두 서로의 생활 리듬에 맞춰야만 했다.


베스트 프렌드인 후배 A와 B는 당연히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한 주가 지나고 기숙사 복도에서 만난 후배 A와 B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학교 앞 마트에 가서 생활용품을 잔뜩 사들고 오는 길이라고 했는데, 둘은 너무 행복해 보였고 마치 신혼부부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아직 룸메이트 형과 어색한 사이였기에 그 후배들이 부러웠고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부러움은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너무 가까운 관계의 끝


시간이 지나자 후배 A와 B는 자주 싸우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도 둘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다른 후배들에게 살짝 물어보니 어제 방에서 둘이 밤새 싸우고 울었다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간혹 A와 B는 싸우곤 했다. 정확한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냥 사소한 이유였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둘은 각자 집에 가서 가족들과 있거나 혼자 쉬면서 시간을 보내고, 또 그다음 날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수업을 듣고 밥을 먹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달랐다. 가족도 없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도 없다. 24시간 룸메이트와 함께 보내야 하고 화가 난 상태에서도 계속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해야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둘의 싸움은 점점 심해졌다.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갔고 일반적인 동성 친구 간의 싸움이 아닌 마치 연인들이 싸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정말 저러다 둘이 절교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적당한 마음의 거리 찾기


한 달의 시간이 흐른 후, 후배 A와 B는 각자 다른 룸메이트와 살기로 결정했다. 각자 다른 방을 쓰고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생기면서 둘의 사이는 다시 회복되었다. 결국 둘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적당한 마음의 거리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


유학생활을 통해 더 친하고 가까워진 경우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이 보았다. 결국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관계가 있고, 저마다 다른 적당한 마음의 거리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적당한 마음의 거리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회사에서 가끔 다른 사람과 점심 약속을 잡을 때면 팀장님은 "그래도 점심은 팀 사람들이랑 같이 먹어야지. 그렇게 따로 점심 먹으면 팀워크에 안 좋아.” 라며 핀잔을 주었다. 어차피 같은 부서 사람이라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10시간 동안 얼굴을 맞대며 일을 하는데, 가끔 점심시간 1시간 동안이라도 물리적 거리, 마음의 거리를 두는 건 안 되는 것일까?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고 그 뒤에는 늘 이런 말이 붙는다. '물리적 거리는 두고 마음의 거리는 가깝게', '사회적 거리 두기는 하더라도 마음의 거리는 좁혀주세요.' 등등. 우리 사회는 무작정 가깝게 지내는 것이 미덕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저마다 적당한 마음의 거리가 다름을 이해하고, 마음의 거리를 두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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