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산들 Jun 15. 2020

친구가 적어도 행복한 이유

친구는 양보다 질이다

[이미지 출처:unplash@harlimarten]


‘다소 내성적이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쓰여 있던 담임 선생님의 평가는 항상 비슷했다. 물론 그 뒤에는 긍정적인 말도 있었으나 ‘내성적’이라는 단어는 늘 나를 따라다녔다.


초등학교 때는 반에서 4~5명 하고만 친하게 지내고 그 외에는 별로 얘기를 나눈 기억이 없다. 특히나 좋아하던 여자애와 짝이 되었을 경우 정말 한 달 내내 말 한 번 제대로 못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상대방은 ‘애는 날 싫어하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인싸가 되기로 결심하다


본인의 내성적인 성격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었고 성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대학교 입학 후, 내성적으로 지냈던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정말 열심히 친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교내 방송국에서 활동을 했고, 과 MT, 체육대회, 과내 동아리 활동까지 열심히 했다.


1학년 내내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고 인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학교 어느 건물에 가도 아는 사람이 한 명씩은 꼭 있었고 학교에 있으면 사람들과 인사하는 것이 일이었다. 자존감은 높아져만 갔고 과거에 소극적이기만 했던 내 모습은 잊혀 갔다.


내가 꿈꾸던 대학생활이었다. 누구와도 금세 친해지고 수많은 인맥이 있는 삶. 이런 생활은 2학년까지도 이어졌다. 과, 동아리에서 항상 내가 중심이었고, 축제 때는 주인공이 되어 연극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2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다.


입대를 하고 나니 대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이 많이 생각났다. 교내 방송국 활동을 했던 일, 연극을 마치고 커튼콜을 했던 순간 등등. 훈련소 생활과 이등병 생활을 버티고 꿈에 그리던 100일 휴가를 나오게 되었다. 100일 휴가 때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역시 학교였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복도에서부터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더 쿵쾅거렸다. 오랜만에 나를 본 동기들은 훈련 때문에 새카맣게 탄 내 얼굴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복학생 형들은 “야 군대 좋지?” 라며 놀리기도 하였다. 반갑게 인사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매일 같이 밥을 먹던 과 동기들은 이제 새로 복학한 사람들과 친해져 밥을 먹으러 갔고, 동아리에 가도 나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나는 그동안 군대에서 힘들게 훈련받았던 얘기도 하고 싶고 예전에 함께 연극을 했던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1~2명뿐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대학교 친구들과 나의 우정에는 ‘깊이’가 없었다.



깊이 없는 인간관계의 허무함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으나 그곳에 나를 진심으로 반겨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안고 돌아왔다. 결국 힘든 군생활 동안 나를 지탱시켜준 건 진심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소수의 친구들이었다. 내게 필요한 건 100명이 넘는 지인들이 아니라 깊이 있는 교제를 할 수 있는 4~5명의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깊이 없는 인간관계에 대한 위험 신호는 몇 번 있었다. 100명이 넘는 지인들을 관리할 수도 없고 그 사람들과 깊이 있는 교제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집 어디야?”,”언제 농구 한 게임해야지.” 등등 의미 없는 인사치레만 오고 갈 뿐이었다. 그중 몇 명은 “전에 얘기해줬는데 또 물어보네.”, “진짜 농구하려고 물어보는 거지?”라며 뼈 때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영양가 없는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알았던 셈이다.


결국 나는 초등학교 때 다소 내성적이었던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처음 만난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억지로 먼저 다가가지도 않으며, 모든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다. 대학교 1~2학년 때는 모든 모임에 따라갔지만 이제 조금이라도 내키지 않는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술잔을 부딪히며 웃고 떠드는 것보다 진심으로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와 마음이 맞는 소수의 사람과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친구가 많지 않거나 본인이 속한 집단에서 친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해도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 깊이 있는 교제를 할 수 있는 소수의 친구만 있어도 인생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법이니까. 혹시 과거의 나처럼 친구의 양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관계의 깊이에 대해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상상 코로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