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유니클로의 삽질
유니클로 불매 운동이 잠잠해지려고 할 때 즈음, 유니클로가 다시 한 건 터트리고 말았다.
논란이 된 광고는 98세인 압펠과 13세인 로저스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13살의 로저스가 “스타일이 완전 좋은데요?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나요?”라며 묻자, 98살의 압펠이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고 대답한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부분은 영어로는 “Oh My God, I can’t remember that far back!”인 대사를 직역하면, “나는 그렇게 오래전 일은 기억하지 못해!”인데 굳이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고 의역을 했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때였던 ‘80년 전’을 강조하면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심기를 건드려버렸다.
한국 패션회사에서 9년째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유니클로는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이다. 신입사원 때 부서 배치 후,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책은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이야기>였다. 이 책은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경영철학, 플리스 아이템이 어떻게 빅히트를 치게 되었는지 글로벌 시장에서의 전략을 담고 있는데, 책을 읽을수록 유니클로라는 회사에 대해 경외심이 들 정도로 대단하고 배울 점이 많았다. 규모의 경제는 비단 자동차뿐 아니라 패션에도 적용되는데, 한국 패션 브랜드들이 글로벌 SPA에 필적할만한 원가구조, 퀄리티를 유지하기란 정말 어렵다. 이렇듯 유니클로라는 거대 공룡의 한국시장 진출은, 수많은 한국 브랜드에 있어서는 커다란 도전이자 시련이었다.
그 사이 유니클로는 한국시장에서 정말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나갔다. 2012년 5,409억이었던 매출은 결국 2015년 1조를 돌파했다. 3년 동안 매출이 2배를 성장하는 기염을 토해낸 것이다. 패션업계에서 1조 매출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국내 SPA 브랜드 탑텐의 2018년 매출이 1,950억이었고, SPA 브랜드가 아닌 백화점이나 가두샵 (로드샵)에 입점해 있는 일반 브랜드의 경우에는 1,000억 매출도 꿈과 같은 수치이다.
내가 예상한 결과는 ‘결국 유니클로가 한국 시장을 제패했습니다.’라는 새드엔딩이었다. 매출 성장세를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반일감정과 유니클로 경영진의 실언으로 인한 불매운동으로 매출이 꺾이고 있다.
패션회사에게 있어 겨울 매출은 매우 중요하다. 일 년 수익이 좌우될 수 있는 시기이고, 많은 브랜드들이 여름에는 2,3만 원 티셔츠를 팔아 어렵게 보내고, 겨울에 20, 30만원 패딩을 팔아 매출과 마진을 보전한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7월에 유니클로가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은 많지 않았다. 이미 겨울상품은 발주가 들어가서 생산하는 중이었고, 갑작스럽게 한국 매장을 철수할 수도 없었으며, 겨울에 불매운동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다시 한번 광고 논란으로 불매운동에 불을 지폈으니, 유니클로에게는 뼈아픈 실수이다. (물론 광고가 실수인지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국내 패션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일본 기업인 유니클로의 약세는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유니클로 불매운동의 반사이익을 국내 패션회사가 다 누리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자라, H&M 등 수많은 글로벌 SPA 브랜드와도 경쟁을 해야 하며, 소비자들이 스마트해진 지금, 애국심에만 호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국내 브랜드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약진하고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끝으로 유니클로 경영진에게 이 멘트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불매운동에 불을 지펴줘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