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산들 Nov 26. 2021

불편한 사이가 좋다

오랜만에 직장 선배와 술을 마셨다. 지금은 다른 부서에 있지만 예전에 2년 동안 같은 부서에서 일하면서 꽤 가깝게 지냈던 선배이다. 그 선배는 유독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점심은 반드시 부서 사람과 먹어야 했고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술자리를 만들어 새벽까지 술을 마셔야 했다.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때론 선을 넘을 때도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이 얼마인지 부모님이 결혼할 때 얼마를 지원해 주셨는지, 왜 그것 밖에 지원해주지 않으셨는지까지 알고 싶어 했다. 본인은 그걸 친밀감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편함과 무례함 사이


거의 2년 만에 예전 팀원들이 모였고 선배는 유독 들떠보였다. 안주가 나오기도 전부터 계속해서 술잔을 비워댔고 술자리가 3차까지 이어지자 선배는 거의 만취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편하다는 이유로 불편한 질문을 쏟아냈다.


“요즘 뭐하고 지내?”

“그냥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해서 정신없습니다.”

“난 네가 뭐하는지 모르겠어. 제대로 일하고 있는 거 맞아? 너는 이 회사에서 꿈이라는 게 있긴 해?”


이런 대화가 오랜만이라 참 불편했다. 지금 일하고 있는 부서는 예전 부서와 다르게 서로 철저히 거리를 두는 곳이다. 회식은 한 번도 한적 없고 서로 말도 놓지 않고, 사무적인 대화 외에는 잘하질 않는다. 어제 팀장님과의 성과평과 미팅에서도 팀장님과 나는 딱 사무적이고 도덕책 같은 아름다운 대화만 나누고 끝났다.


"요즘 뭐 힘든 일 없죠?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 힘들 텐데 잘 적응해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팀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로 친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불편한 그런 사이였다. 가끔 ‘이 팀장님은 속으로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솔직하지 않고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날 선배와의 술자리는 결국 안 좋은 분위기로 끝났다. 선배는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네가 친하고 편하니까 내가 얘기해주는 거야.”라는 말로 내속을 뒤집어 놓았고, 결국 나는 “제가 일을 못하는 거였으면 저희 팀장님이 이미 저를 잘랐겠죠. 제가 신입도 아니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 다음날 우연히 로비에서 선배를 만났지만 선배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피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친하다는 그리고 편하다는 이유로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걸까? 친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냥 불편한 사이로 지내고 싶다.


<이미지 출처: unsplash@israelandrxde>


매거진의 이전글 주식으로 얼마 벌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