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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Jun 09. 2024

새들은 파주에 가서 운다.

 이어지는 휴일 탓에 토요일 같지 않았다. 주말 너머에 있는 숨어있는 시간을 사는 기분이었다. 아침에는 비가 왔다. 당신이 보고싶었다. 분명 한마디를 할 텐데. ‘우리가 만나면 비가 오네요.’ 같은 말들. 그러면 나는 말들에 젖어 기억 하나를 늘릴 터였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결을 따라 햇볕이 움직였다. 너울거리는 햇볕을 받으며 당신이 있었다. 나무바닥에는 오늘의 마지막 햇볕들이 바람을 닮아 넘실거렸다. 나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책을 읽는 당신을 보고 있었다. 공간을 채우던 노래소리 사이로 새 한 마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오후 여섯 시. 세상에 없을 행복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에도, 후로도 이런 행복이 다시 있을까. 나는 지극한 행복의 확신 속에서 당신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고 나는 그 하얀 풍경이 좋았다. 파주였다. 오후 여섯 시의 예민한 햇볕은 나뭇잎의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쉽게 넘실거린다.      


 시선이 이르는 곳마다 노을이었다. 당신은 아름답다는 말을 ‘외국에 온 것 같아’라는 말로 대신했다. 나도 외국에 온 것 같았다. 들어본 적 없는 나라에, 당신과 단 둘이. 그곳에서 우리는 말을 잃고, 능숙한 이방인이 되어, 이국의 말을 더듬거리며 어설픈 몸짓으로 겨우 물 한잔을 주문하거나 화장실을 찾는 사람이 되어, 처음 보는 풍경이나 생경한 음식 같은 것을 찾아 해매면서, 하루종일 익숙한 것이라고는 오직 서로일 뿐인 것처럼, 나는 당신만을 간직한다고. 그때도 새소리가 있었던 것 같다.     


 결국에 나는 욕심 하나가 생겨버렸는데, 이 순간에 영원히 갇혀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잠을 기점으로, 깨어나면 다시 오늘 아침이다. 비가 조금 온다. 나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하고 당신은 결국 나를 만난다. 그리고 우리는 들어본 적 없는 나라로 간다. 그곳에서 햇볕을 받고, 책을 읽고, 와인을 마시고, 글을 쓰고, 다시 잠에 들면, 비가 조금 오는 아침이기를. 오늘 하루에 영원히 갇혀버리기를. 주말 너머의 숨어있는 시간에 영원히, 들어본 적 없는 나라에 단 둘이 갇혀버리기를, 그래서 비가 오면 당신은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날 때면 비가 오네요.’ '사실 우리는 주말 너머의 숨은 시간에 갇혀버린 것이고, 그 때 우연찮게 비가 오는 것일 뿐이에요.' 라는 말을 나는 억지로 참다 보면,      


 새들은 파주에 가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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