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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Jun 09. 2024

38세 이도윤 #5

 이도윤은 어느새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래 인간에게 진심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마음을 드러내고 고백을 하며 약속을 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인지. 자신도 한 때 자연스럽게 가능했던 것들이 이제는 의문스럽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숨쉬기를 의식하는 순간 숨쉬기가 어색해지는 것처럼, 이도윤은 진심을 의식하는 순간 사람을 향한 마음이라는 게 어느 철부지의 서툰 발명품처럼 느껴졌다. 진심이라는 건 진심일 수 없다. 진심이야말로 의미에서 멀어진 단어다. ‘다들 진심인 척하며 사는 게 아닐까’ 이것이 이도윤이 내린 최선의 결론이었다.      


 확정 지을 수 없는 병 –이라고 이도윤은 자신을 진단했다. 그는 어떤 것도 확정지을 수 없었다.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해도, 남들 보이기에는 다 그렇게 보여도, 이도윤 자신만큼은 확정지을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우정도, 사랑도, 이도윤 자신마저도 그는 확정짓지 못했다. 확정지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진심과 진실 사이의 공간에서 그는 물러날 수 있는 곳까지 물러나 있었다.     


 아침이었다. 이도윤은 자신이 누군가가 뱉어버린 양칫물같다고 느꼈다. 겨우 뜬 눈을 다시 감았다. 오분만 더.. 그 오분. 가장 진심에 가까운 만족. 늦장부리는 일탈감과 잠이 주는 노곤함을 동시에 누리는 아침의 오 분은 이도윤의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매번 중간이 삭제된 것처럼 흘러가버렸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진심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정수리에 물을 끼얹었다. 이가 가려운 듯 칫솔질을 하고 성난 듯 머리를 감았다. 되도록 왜 일을 나가야 하나라는 질문에까지 생각이 이르지 않도록 서둘러 씻었다. 잠이 채 깨지도 않은 채 현관을 열고 일을 하러 나갔다. 일인분의 삶을 지탱하는 이도윤의 생존 전략은 하루하루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도윤은 지하철을 탔다. 거기에는 표정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도윤은 핸드폰을 보았다. 카카오톡을 열었다. 새 메시지가 세 통 와 있었다. 버거킹, gs25시, 현대아웃렛... 쿠폰 몇 장과 세일 소식 이외에는 어제 이후로 이도윤에게 당도한 소식은 없었다. 얼른 닫아버리고 네이버에 들어간다. 관심도 없는 뉴스 몇 개를 클릭한다. 메일을 확인한다. 역시나 사람으로부터 온 메일은 없다. 이럴 땐 무엇을 해야 하나. 이도윤은 망설였다. 경제 유튜브나 보아야 할까... 그것이 어른의 일인분에 해당한다고 그는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조금 망설이다가 그는 핸드폰으로 퍼즐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퍼즐을 마음껏 확정지었다. 어떤 결정에도 부담이 없었다.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면 그만이다. 이번 스테이지를 못 깨도 그만. 깨도 그만.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지나갈 테니. 이도윤에게 중요한 것은 표정이 사라진 이 시간을 삭제하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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