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어오르는 무언가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 생각들일까 감정들일까. 규명하기 어려운 어떤 상태가 해를 넘겨 지속되었었다.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는 통제의 범위를 넘어서고 동시에 삶에 대한 통제력은 멀어져갔다. 우연히 명상을 배우고 생각과 거리를 두는 태도가 더 건강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관련된 책을 꽤 읽었다.
“당신은 사거리 교차로에 나와있습니다. 거기에는 파란색 차, 빨간색 차, 검은색 차가 어지러이 돌아다니지요. 차들이 너무 신기한 나머지 당신은 차의 꽁무니를 쫓아갑니다. 빨간색 차가 멀어지자 이번엔 파란색 차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다음엔 검은색 차를 쫓아다닙니다. 그러는 도중 원래 가려던 곳도 잊어버리고 눈에 띄는 많은 차들을 쫓아다니느라 당신은 지쳐버리고 말지요. 이게 우리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에 소개된 어떤 스님의 가르침을 20%정도의 정확성으로 옮겨본다. 무언가가 치밀어오를 때 항상 떠올린다.
이 밖에 마음공부(혹은 상태 바꾸기?)와 관련된 책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놓아버림, 의식혁명(데이비드 호킨스), 위빠사나 명상책,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 등이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장점은 결코 스승의 위치에서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험자 혹은 동행자의 위치에서 명상과 삶, 생각과 수련에 대한 깨달음을 전한다. 이것도 얀테의 법칙일까. 편하게 다가오는 명상책.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읽으면 고요해짐을 느낄 수 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서. 무언가가 끊임없이 치밀어 오르던 시절. 나는 매일을 어찌할 바 모르는 심장을 안고 뭐라도 해야된다는 강박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밤에는 울지도 못하고 기절하듯 잠을 잤다. 명상을 하면 요동치는 생각들에 온 몸이 끓어오르듯 했는데. 그렇게 시간을 꽤 보냈다. 뭐 그뿐인가. 유독 오래가는 사춘기 때문에 꽤나 나이를 먹고도 어른구실을 못했다. 늘 요동치고 급박하고 부실하고 허술하고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눈빛으로 뭐라도 해야된다는 강박을 가진 채 하루하루를 살았는데, 겉으로 보기엔 여느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 그래서 모두들 나를 그럭저럭 사는 줄로만 알더라.
그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이제 가까스로 허물어질 것 같은 눈빛도 끓어오르는 몸뚱아리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가끔 명상을 하는데 생각들은 가지런히 흘러갈 곳으로 흘러간다. 결국 겪어야 할 일을 겪었던 것일까. 그리고 만난 당신은 나에게 참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 시절이 내게 준 선물일 것이다. 치밀어오르는 무언가와 싸우다가 무너졌으나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놓아 보내주면서 좋은 사람이 되었던 것일까. 그래서 나는 겨우, 당신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일까.
당신이라는 꿈. 당신이라는 사랑. 당신이라는 사람. 당신이라는 삶. 이 모든 고통과 우연의 끝마다 당신이 서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겪어야 할 일을 겪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