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형욱 Jun 24. 2024

산뻐꾸기를 흉내냈던 어느날

 내가 나온 대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특이한 학교였다. 일종의 필수과목 같은 것이어서 졸업을 위해서는 4개의 학기동안 좋든 싫든 기숙사로 대표되는 단체생활을 해야만 했다. 대학교는 충경도 충정시의 한적한 시골에 있었다. 주변에는 논과 밭이 전부였다. 기숙사 생활은 좋든 싫든 피할 수 없었다. 통학은 애초에 불가능했고 대학교 주변에는 살림을 꾸릴 만한 곳이 드물었다. 그러니까 기숙사 생활은 모두의 의무이자 필요였다. 기숙사에는 이제 막 집에서 벗어난 스무살들이 모였다. 스무살들은 서툴고 요란하게 밤새 떠드는 것이 일이었다. 밤이 되면 논과 밭, 산으로 둘러싸인 학교는 고요와 어둠에 휩싸였다. 그럴 땐 기숙사 뒷산에서 산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꾸우 꾸우 꾸루루...”     


 내 첫 룸메이트는 공대생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그의 전공 때문에 생긴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기계처럼 움직였다. 이제 막 생명을 얻은 초기 버전의 로봇같았다. 살짝 말을 더듬었다. 생각하는대로 말했고 말하는대로 행동했다. 농담을 할 줄 몰랐고 내 농담을 이해할 줄 몰랐다. 늘 같은 시각에 일어나 같은 방식으로 씻었고 같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늘 공부를 했고 늘 무엇인가를 외우고 있었다. 그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장난은 기숙사 뒷산의 산뻐꾸기 소리를 흉내내는 것이었다. “꾸우 꾸우 꾸루루... ” 룸메이트가 산뻐꾸기를 흉내낼 때 나는 안도했다. 그 장난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가 정말 기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은 산뻐꾸기 소리를 흉내내는 로봇이었을까.     


 문과대생인 나는 액체처럼 움직였다. 제멋대로 일어나고 제멋대로 잤다. 외박이 잦았고 낮잠이 많았고 걸핏하면 밤을 샜다. 말 중 절반은 헛소리였고 나머지 절반은 농담이었다. 남들에게는 짓궂었으나 나에게는 섬세했다. 그래서 서툴고 요란한 스무살이었다. 한쪽은 징그럽고 한쪽은 더러워서 전체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날은 내 룸메이트가 공대의 행사를 하고 오는 날이었다. 공대생들은 그들끼리 모여 취하고 구호를 부르는 일을 즐겼다. 그 의식이 그들의 소속감을 키워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구호는 전자기였다.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 구호를 외쳤다. 전자기, 전자기, 전자기.. 기숙사 앞까지 와서 그들은 동그랗게 모여 구호를 외쳤다. 얼큰하게 취해 벌겋게 달아오른 그들에게 기숙사 건물의 여러 창문에서 조용히하라는 고함이 건너왔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요란한 구호와 조용히하라는 고함이 잦아들고 머지않아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룸메이트는 취기와 그들의 소속감과 봄 밤의 분위기에 상기된 표정이었다.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어.. 아 아직 안자고 있었네..”

“자고 있었는데 전자기 구호에 깼어.”

“어 미... 미안...”

“농담이야, 안자고 있었어. 신입생놀이 할만 해?”     


 나는 농을 던지며 장난을 쳤다. 그러자 룸메이트는 어떤 비장함이 취기에 섞여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나는.. 지금 놀고 있는 게 아니야...”

“.... 어 그래 씻고 와라..”     


진지해진 룸메이트를 샤워실로 쫓아내고, 나는 잠시 고요한 시간을 가졌다. 산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꾸우.. 꾸우.. 꾸루루...”     


샤워를 하고 돌아온 룸메이트는 나에게 말했다.

“나.. 나는 지금 놀고 있는 게 아니야.. 나는... 꿈이 있어..”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교통사고였나, 암이었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무튼 그는 아버지 없이 자라야 했다. 그와 그의 동생을 돌보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무던 애쓰셔야 했다. 이사가 잦았고 동시에 전학이 잦았다. 두 아들은 금세 커갔으므로 그의 어머니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만 했다. 주위에 도와주는 친척도 없었고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학원이나 과외를 할 형편은 될 수 없었으나 그의 어머니께서는 독서실비만큼은 밀리지 않았다. 그 또한 이를 악물고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강의 없이, 대화 없이 책과 함께 독서실에 갇혔다. 집에 가면 눈치가 보였다. 조용한 독서실,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했다. 그러니까 독서실은 그에게 의무이자 필요였다. 그렇게 공부해서 간 곳은, 기숙사가 의무인 학교였다. 숙식을 해결하며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향해 그는 기계처럼 굳은 마음으로 온 것이다.      


“나..는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입사할거야... 두고 봐...”     


그에게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꿈이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버는 일. 흔하디 흔한 꿈이라지만 그에게는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생의 과업인 냥, 꿈인 냥 단호히 내게 말했다.          


 그게 십 년전 일이다. 나는 서른이 되었다. 입사 지원서에 쓸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기 위해 오랜만에 충경도 충정시의 대학교를 찾았다. 그동안 나는 스물 다섯 쯤 대단한 문학작품을 남기고 요절하지 못했다. 멋진 시험에 떡하니 붙지도 못했다. 사업을 일으키지도 못했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지도 못했다. 그렇게 서른이 되었다. 나는 처음엔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보냈다. 시가총액 100등까지 내 지원을 안받아 본 회사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대기업 입사에 실패했다. 문과생이기 때문에. 유학을 다녀오지 못해서. 공모전 스펙이 부족해서.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수많은 핑계거리가 있었다. 이번엔 눈을 낮추어 중견기업에 지원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핑계거리를 재사용했다. 남은 것은 중소기업들. 나는 일단 어디라도 입사를 해서 경험을 쌓아서 이직을 하리라.. 생각했다.      


 교수님을 뵙고 추천서를 받아 나오는 길은 이미 저녁이었다. 석양 너머로 거뭇거뭇한 구름이 있었다. 나는 학교를 나오며 스무살을 보냈던 기숙사를 지나갔다. 산뻐꾸기가 울었다. “꾸우 꾸우 꾸루루...”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혼자 흉내내어 보았다. “꾸우 꾸우 꾸루루...” 

작가의 이전글 38세 이도윤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