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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Jul 07. 2024

스타벅스의 공간학

 나는 글을 쓰거나 모임을 할 때, 책을 읽거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스타벅스에 자주 간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가는 것 같다. 그것은 글을 쓰거나 모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있다는 말이다. 스타벅스에 가는 이유는 실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단한 기대 없이 스타벅스에 간다. 나는 거기서 커피를 마실 것이다.  익숙한 조명의 채도 안에서, 가구와 인테리어가 풍기는 브라운 빛깔의 분위기 속에서, 재즈풍의 느리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조금 많은 듯한 사람들 속에서, 예측가능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위대한 시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리에 앉는다. 여럿이 모일때는 커다란 테이블에 앉는다. 혼자 가면 구석진 곳의 소파에 앉는다. 적당히 편안하고 적당히 아늑한 곳이다. 짐을 푼다. 나는 주로 노트북과 함께이다. 컴퓨터에 전원을 연결하거나 노트를 펼치고 펜을 준비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열어 사이렌 오더로 주문한다. 열에 아홉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가끔 한 번씩 한번도 마셔보지 않은 새로운 음료를 주문한다. 대부분 무료 음료 쿠폰이 있거나 이미 커피를 마셨을 때다. 새로운 음료를 다음번에 다시 주문하는 일은 드물다. 호텔에 머문 여행자가 집에 돌아오듯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되돌아간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여러 메뉴가 필요 없다. 딱 두 개면 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처음보는 음료. 그러면 열에 아홉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열에 한 번쯤 처음보는 음료를 주문할 것이다. 그리곤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되돌아갈 것이다. 처음보는 음료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프라푸치노든, 돌체라떼든, 밀크티든 뭐든 무관하다. 무슨 음료를 주문하든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다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메뉴를 개발중인 바리스타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그들의 노력은 나에게만큼은 헛되다. 나같은 사람만 있다면 커피시장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그 외 음료로만 분류되었을 것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바리스타는 원두를 곱게 간다. 저 멀리 브라질, 케냐, 콜롬비아,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을 원두들이 까맣게 그을린 채 아래에 깔린 녀석들부터 가루가 된다. 곱게 갈린 녀석들은 에스프레소 머신 안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진한 체액을 내어놓는다. 소주잔만한 에스프레소 잔에 담긴 녀석들의 진한 체액은 얼음물 속으로 들어간다. 짙은 갈색의 체액이 천천히 퍼져나간다. 그 모습은 예측가능한 공간 속에서 예측가능한 속도로 펼쳐진다. 흐트러지거나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성급해서 실망시킨적이 단 한번도 없다.     

 점원이 나를 부른다. 익숙한 옥타브와 크기로. ‘폴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나는 지체없이 커피바로 간다. 점원은 묻는다. ‘폴 고객님이세요?’ 나는 고갯짓으로 대답한다. 점원은 다시 말한다. ‘좋은 시간 되세요.’ 일련의 과정들은 내가 오늘 겪은 친절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든다.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음료가 나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친절과 함께 나온다.     


 그리고 나의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대화를 하거나 모임을 한다. 그러한 작업들의 과정과 결과는 때로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때로 실망하기도 한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 혼란스럽기도 하다. 사람들은 내 주문을 듣지 않고 사람들은 내게 친절하지 않으며 나는 열과 압력을 받기도 한다. 책은 익숙치 못한 명도에서 어두워지기도 하고 글은 브라질, 케냐, 콜롬비아, 인도네시아에 사지四肢를 두고온 듯 엉망진창이 되기도 한다. 흐트러지거나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성급한 생각들이 내 안에 퍼져나가는 건 예사다. 그때 내가 몸담고 있는 공간만큼은 예측가능하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그래서 스타벅스에 간다.     


 스타벅스에서의 볼 일을 끝내고 나설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이 공간 다음의 공간은 어디일까. 일주일에 한 번은 다시 들러야 할 스타벅스이지만, 지금 내가 머물 공간은 어디인가. 나 같은 사람은 어디에 머물러야 할까. 그러면 떠오르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익숙한 조명의 채도를 가진, 오직 그사람만이 가진 빛깔의 분위기 속에서, 느리고 조용한 음악처럼, 여행자인 나를 쉬게하는 집과 같은 사람.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무슨 목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예측 가능한 청량함으로 나를 맞아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같은 사람. 만나면 열에 아홉은 행복한 사람. 열에 하나 가끔 싸우고 나면 더 끈끈해지는 사람. 대단한 기대 없이도, 대단한 실망 없이도, 대단한 믿음을 안겨주는 사람. 혼란과 열과 압력과 엉망진창인 나의 이름을 늘 같은 친절로 불러주는 사람. 다가올 행복의 규모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 적당히 아늑하고 적당히 편안한 사람. 그러나 비슷한 사람은 전혀 없는 사람. 당신. J.      


 나는 글을 쓰거나 모임을 할 때, 책을 읽거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스타벅스에 자주 간다. 그 외의 시간은 J와 함께 있고 싶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J를 모방할 뿐이다. 스타벅스는 궁극적으로 J다. 나는 궁극적으로 J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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