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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Jul 05. 2024

 행복은 선택이야

 여름이고 스무 살이었다. 한 달간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돈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첫  해외여행의 행선지로는 괴퍅한 인도였다. 그때는 그런 게 좋았다. 별나고 고생스럽고 특이하 고 처절한 무언가. 있어 보이고 심각해 보이고 별스러운 어떤 것. 그렇게 갠지스강을 끼고 있는  바라나시의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두 달째 바라나시를 여행 중이었다. 머물면서 오전에는 요가 수련을, 오후에는 도시  곳곳을 여행한다고 했다. 두 달씩이나 머물 필요가 있냐는 물음에 그녀가 대답했다. “행복은  선택이야.” 그때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선택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충동과 만족만 있었으므로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선문답 같은 대화가 끝나고 우리 일행과 그녀는 헤어졌다. 


 우리 일행은 짧은 일정으로 바라나시를 여행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골목길이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었다. 널찍한 골목이 많았지만 어지간한 세탁기보다 좁은 골목도 있었다. 그렇게 좁은  길을 만나면 우리 일행은 어깨를 잔뜩 접거나 게처럼 옆으로 걸으며 상처를 향하는 백혈구처 럼 골목을 지나갔다. 우리만 있으면 다행이었다. 간혹 가다 골목 가운데 소라도 한 마리 있으 면 우리는 한참을 걸어온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신기한 것은 그 골목의 끝은 항 상 갠지스강을 향한다는 사실이었다. 수많은 모세혈관들은 갠지스강이라는 동맥을 향해 뻗어 있었다. 혹은 갠지스강의 넋이 뭍으로 올라와 수많은 골목에 걸쳐 뻗어있는 듯했다.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더위와 오물, 호객꾼과 인파에 지쳐 오늘의 여행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우리 일행은 모세혈관 같은 골목길을 거쳐 갠지스강에 도착했다. 석양을 받아 보랏빛으로 물든 갠지스강에 저녁빛을 받은 보라색 사람들이 있었다. 강가에는 장례식이 한창이 었다. 많은 시신들이 갠지스강변의 화장터에 모여 태워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본 것은 그 화장터였다. 


 그녀는 돗자리 하나를 깔고 앉아 하늘을 찌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무잡잡하게 탄  피부에 하얀 눈동자가 불빛을 받아 빛났다. 어둑해진 하늘과 불꽃과의 경계가 명확했다. 그녀가 하늘을 보는 것인지 불꽃을 보는 것인지 타오르는 시신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가 별나고 특이하고 있어보이고 심각해보이고, 한마디로 괴퍅해보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종종걸음으로 그녀의 옆에 다가갔다. 그리고 물었다. “무 엇을 보고 계세요?” 그녀는 우리임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말했다. “인도에는 갠지스강에서 장례를 치르면 꽤 좋은 삶으로 환생한다는 믿음이 있어요. 갠지스강이 다음 생으로 이끌어준다고 믿죠. 인도 곳곳의 시신이 이곳으로 모인답니다. 저는 삶보다 간절한 죽음을 보고 있어요. 바라나시의 두 달동안 매일의 여행은 이곳에서 마무리해요. 그리고 생각해요. 내 삶은 이 죽음들보다 간절한가 하구요.” 


 그 때 우리는 삶도 죽음도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별났고 특이했고 있어보였고 심각해보였다.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여행은 끝이 났지만 나는 끝없는 고행을 계속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돈을 벌고  공과금을 내어가는 수많은 시간들이었다. 사랑을 하고 상처를 받고 사람을 버리고 사람에게  버림받는 일들이 이어졌다. 모세혈관같은 하루하루를 지나 어디론가 당도한 이 삶은 있어보이지도 특이하지도 심각하지도 괴퍅하지도 않았다. 적당한 직업과 적당한 일과 적당한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 처절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괴팍한 노력으로 적당한 평범함 을 이루었을 때 나는 만족했다. 


 엊그제였다. 유독 힘든 하루였다. 일은 고되었고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았으며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기분이 들었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가 좁은 골목길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깨를 잔뜩 접고, 때로는 게처럼 옆으로 걸으며 그 하루를 지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씻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이 침대는 나를 내일로 이끌 것이다. 간절히 바라며 눈을 감았다. 고요함을 확인한 뒤 기시감에 몸서리쳤다. 나는 삶보다 간절한 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왜 두달씩이나 그곳에 머물렀을까. 그리고 왜 매일같이 갠지스강의 화장터를 바라보 았던 것일까. 삶보다 간절한 죽음은 무엇이며 죽음보다 간절한 삶은 무엇일까. 자기 전 갑자기 솟아오른 질문들은 골목길처럼 뻗어나갔다. 나는 그 질문들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질문들을 가까스로 지나갈 뿐이었다. 지나갈 수 없는 질문들에는 다시 먼 길을 돌아가면서.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나는 하늘을 보았다. 오늘 점심은 꽤 맛있었다. 오늘 거리는 깨끗했고 침대는 푹신하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나는 오늘도 가까스로 잘 살았다. 골목을 지나온 생각들이  상처를 향하는 백혈구처럼 갠지스강에 이르렀다. 그녀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행복은 선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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