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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Nov 21. 2024

지하철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에즈라 파운즈     




 임용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사촌동생이 다니던 대학원 근처에 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나는 발령받은 학교 근처에 집을 얻기 전까지만 그 집 작은방에 잠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일 년 동안 골방에서 생활한 나에게 서울이라는 공간은 감각과 생각의 과잉을 강요했다. 나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시간에 살아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세상은 내가 알던 것보다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거기에 다들 익숙해 보였다. 나는 멍한 얼굴 뒤로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3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다.


 아침의 지하철 역 근처에선 운동화를 신은 사람보다 구두를 신은 사람이 더 빨리 걸었다.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고 나는 다음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곧 도착하는 지하철을 잡아 탈 자신이 없고 바삐 움직이는 일에 재능이라곤 없으며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었기 때문이다. 


 단지 지하철 한 칸에 잠시 모여있다는 이유로 그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의도치 않게 핸드폰으로 무엇을 하는지 훔쳐보게 될 때도 있다. 멈추는 지하철 안에서 쓰러지지 않으려 서로를 지지대 삼아 지탱할 때도 있다. 이렇게 가족보다, 연인보다 가까이 있는 타인들.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숨죽여가며 서로를 조용히 버티는 사람들. 표정이 사라진 얼굴들 안으로 다들 무엇을 바라 살아가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아침을, 저녁을, 이 공간을 거치며 그들은 어디에서 나와 어디를 가고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하루하루를 이어나가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순환선은 끝없는 철로를 따라 다음 역을, 그다음 역을 멍한 얼굴로 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갈아타야 할 곳에 이르러 열리는 문의 반대편에 있었다. 출근 시간에 사람들은 붐벼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로 꽉 차있는 지하철 안으로 꽤나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다. 그들은 서로를 밀치고 서로를 누르고 양해를 요구하며 밀려들어왔다. 골방생활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나는 말도 못 하고 사람을 밀지도 못하고 그렇게 내려야 할 곳을 지나버리고 말았다. 어쩔 줄 모르는 동안에도 지하철은 움직였다. 나는 다음 역도 놓쳐버렸다. 그다음 역이 되어서야 더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려야 한다고 말하며 앞사람을 밀고 옆사람을 밀치고 여기저기를 파고들어 겨우 내릴 수 있었다. 이거 너무 실례가 아닐까. 나의 행동에 불쾌한 누군가가 따라 내려서 나를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누군가가 내 뒤에 대고 욕을 하지는 않을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지하철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을 파헤치고 지나간 나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다. 골방에서만 지내던 나는 미처 몰랐다. 그들은 그만큼 지하철을 사랑했던 것이다. 멍한 표정을 한 그들을 지하철 문이 조용히 덮어주었다.     


 그 뒤론 내려야 할 곳을 사람에 밀려 놓친 적은 없다. 누군가 나를 밀쳐도 나는 함부로 지하철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만큼 지하철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에 못지않게. 지하철은 매일 지독한 애증을 싣고 지하를 가로지른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 인생의 몇 푼 정도는 지하철에 할애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굴레와 같은 것이다. 지하철이 발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류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어두컴컴한 동굴을 늘 그리워했고 간편한 이동을 핑계로 그들이 수만 년을 보내왔던 공간을 본떠 지하철을 만들었다. 인간은 아침마다, 때로 해가 지면, 혹은 집을 떠나 멀리 움직일 때면 지하동굴 속으로 얌전히 들어간다. 수만 년 전 그들의 조상처럼 미처 떨치지 못한 애증을 멍한 얼굴 뒤에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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