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그리고 그대

그대, 난 그대의 의견을 듣고 싶어.

by 이종화

하루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자면, 성姓 에 직함 하나만 달 랑 붙여 ‘윤 팀장’, ‘이 과장’ 이런 식으로 딱딱하게 부르지만은 않는다. 소위 학창 시절 별명처럼, 애칭이란 걸 만들어 불러주곤 하는데 그 말이 재미있다며 너도나도 쓰기 시작하면 유행이 되고, 그게 오랫동안 아주 굳어지면 관습이 된다.
첫 출근을 하고 며칠 지났을 무렵이다. 제법 무거워 보이는 짐을 들고 낑낑대던 한 남자 선배가 나를 보고 한껏 반기며 외쳤던 말이,
“자기야, 나 좀 도와줄래?”였다.

어리둥절했지만, 퍽 신선했다.

한참을 돕고 난 후, 땀을 뻘뻘 흘리던 내게 그 선배는,

“야, 난 자기 없었으면 이거 못했을 거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부장님이 팀장님들을 다급히 부를 때면 꼭 ‘선수 先手 ’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봐, 박 아무개 선수. 내 방으로 좀 와 봐!”는 내가 회사에 들어오기 한참 전 우리 부장님이 부장님의 부장님으로부터 들었을 말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재미있었던 건, 이 말이 쓰임새에 따라 조금씩 변형도 되더란 것이었다. 이름을 통째로 부를 때면 ‘선수’라 하지만, 성 姓 만 쏙 빼서 부를 땐 성씨 뒤에 professional의 줄임말인 ‘프로 pro’를 붙였다. 그래서 김 씨였던 우리 팀장님은 ‘김 프로’였고, 이 씨였던 옆 팀 팀장님은 ‘이 프로’였다. 혹여 박사博士 학위가 있는 분은 ‘프로’ 대신 ‘박사’를 붙여, ‘구 박사’로도 불렸다. 가끔 그런 부장님을 따라 자기 팀원들을 그렇게 부르는 팀장님들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프로를 찾는 프로들이 많아지고, 그렇게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면 회사는 온통 프로와 박사, 선수들로 웅성거렸다. 그래도 신입이었던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자기’로만 불렸다.
몇 년이 지나 내게도 새로운 호칭이 생겼다. 그게 바로 ‘본인本人’이었다. 어느 날부터 선배들 앞에 서면 난 ‘본인’으로 불렸다. 공식적으로 직함을 부르기엔 너무 가깝고, 너라고 칭하기엔 조금은 어색한, 우리 사이 그 어디쯤에 존재하는 말이 바로 본인이었다. 특히, 무언가 꾸지람을 들을 때면 격한 말보다는 본인이라는 별호別號로 불리는 게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아침에 출근을 하면 나는 한 사람의 본인으로 보고도 하고 회의도 하고 꾸중도 들어가면서, 하루를 일 년처럼 살았다. 오후 햇살이 사무실 창가에 스며들면 친구들과 아이스커피 한 잔씩 사들고 건물 밖으로 나와 ‘본인놀이’를 하기도 했다.
“어이, 본인이랑 나랑 회사 그만두고 커피집이나 할까?” 이렇게 말이다.
다시 몇 해가 흘렀다. 내 이름 뒤에 ‘행원’의 꼬리표가 사라지고 직함이란 게 생겼지만, 여전히 직함보다는 ‘자기’와 ‘본인’에 더 익숙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 시간에 곤란한 안건이 새로 올라왔다. 누구도 의견을 선뜻 내지 못하는 가 운데 초조하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평소 잘 들리지도 않던 시계의 초침 소리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누군가 가 정적을 깨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 난 그대의 의견을 듣고 싶어.”

“네?”

“그대. 그대 말이야.”

“네.”
이후로 난 그분과 이야기 나눌 때마다 그분의 ‘그대’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 말고도 그분에게는 그대가 제법 여럿이었다.
직장에서 쓰는 애칭은 가끔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늘 쉽 게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숙제를 안고 하루를 보내야 하는 우리에게, ‘자기’와 ‘그대’ 같은 제법 요염한 말들이 있다는 것 은 참 다행한 일이다.
이렇듯 별호는 자연스레 생겨야 정다운 맛이 나는 것 같다. 이따금 억지로 만든 호칭이 곁을 부담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언젠가 중년의 서예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자신을 소개하며 예명藝名과 아호雅號를 부끄러운 듯 자랑스럽게 함께 일러주었다. 뜻을 풀이해 보면 대단히 훌륭하긴 했으나, 본명도 기억하기 힘든데 예명에 아호까지. 지금은 셋 중 어떤 브랜드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다시 만난다면 그분은 이런 나에게 못내 섭섭해할 게 뻔하다.
실은 나 역시 어린 시절 스스로 호 號 라는 걸 지어본 적이 있다. 순전히, 소위 말해 ‘있어 보이기’ 위해서였는데 돌이켜 보면 그 맘이 무척이나 치기어린것이었다는 자책이 든다.

‘호’는 서로를 일러 함부로 이름으로 칭하지 않던 시대의 예법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멋으로만 호를 붙인 게 아니라, 대놓고 이름 부르기 어려운 상대를 향한 존중의 마음을 오늘날의 ‘본인’과 ‘그대’ 그리고 ‘자기’처럼 말에 담아 표현한 소통의 한 방편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한학漢學을 익혔던 돌아가신 내 외조부도 누군가가 자신의 호를 일컫는 것을 늘 경계하였던 것을 보면, 이미 모든 삶이 현대화된 우리에게 아호가 별칭으로서 가지는 의미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굳이 호를 만들어 쓰지 않더라도 브라이언 Brian이니 샘 Sam 이니 하는 멋진 영어식 이름에 인터넷 아이디까지, 현대인들은 옛사람들이 갖지 못한 별호도 제법 많지 않은가.


요사이 출근을 하면, 몇 년 전 내가 있었던 그 말석을 채워 주는 고마운 후배들 얼굴이 보인다. 바쁜 일상 속 이따금은, 긴장된 모습으로 기웃기웃 눈치를 살피는 그들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자기? 아니면, 그대? 혼자서 연습이라도 해봐야겠다. 그대, 난 그대의 의견을 듣고 싶어.


이종화 수필집 《가면무도회》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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