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와일드>를 읽고
와일드
이번 달 인문학 살롱 북클럽 책은 셰린 스트레이드의 <와일드>였다. 가을 최인아 책방에 있다가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 표지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스틱에 의지해 길을 걷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4,285km, 가장 어두운 길 위에서 발견한 뜨거운 희망의 기록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혼자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거리를 걷는 여자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혼자서 저 긴 길을 걷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셰릴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 역시 내 안의 어떤 길을 천천히 되짚게 되었다.
셰릴은 엄마를 잃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꿈이 뭔지 생각하지 않는다. 쉽게 남자들과 관계를 맺고, 헤어지며, 절망에 빠진다. 우연히 신문 가판대에서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정보를 얻고 무작정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REI에 가서 등산화를 사고, 배낭에 필요한 것들을 담아 여정을 시작한다. 처음에 배낭이 무거워 제대로 일어설 수도 없는 상황이 공감되었다. ‘저 짐을 어떻게 다 지고 그 거리를 완주한다는 거지?’나도 모르게 셰릴의 마음에 이입되어 한숨부터 나왔다. 모하비 사막의 허름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시작한 그녀의 걷기는 출발부터 아슬아슬했다.
미국에 있을 때 아이들과 그랜드 캐니언, 세도나에 간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도 험난한 길을 아이들은 잘도 걸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흙길과 반대로 눈으로 덮인 바위산, 낭떠러지가 바로 옆인 좁은 길을 헉 소리 나도록 뛰어다녔다. 나에겐 위험, 절대 금지인 길이 아이들에겐 모험이자 신나는 놀잇거리였다. 책을 읽으며 그때 걸었던 길이 생각났다. '함께'가 아니었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미지의 세계.
셰릴은 야생의 숲으로 들어가 혼자 음식을 먹고, 곰과 여우와 방울뱀을 보며, 낯선 곳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 물이 없어 오염된 호수에 있는 물을 휴대용 정수리에 받아 걸러 마시고, 무거운 배낭 때문에 등과 엉덩이가 짓무르고 상처 난 몸을 이끌고(게다가 맞지 않은 등산화 때문에) 발톱이 빠져 절뚝거리면서도 계속 걷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그녀는 생각했을 것이다. “난 왜 여기 있는 거지?”
초등학교 땐가 북한에서 비행기 두 대가 우리 쪽으로 넘어와 대피한 적이 있다.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고 아파트 주민들은 놀라 지하 대피소로 향했다. 나와 동생도 사람들을 따라 지하실로 따라 내려갔다. 무섭다며 울기 시작한 어느 여자의 울음소리가 지하실에 가득했다. 그때 나타난 아빠. 손에는 라디오와 손전등을 들고 우리에게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동생과 나와 엄마는 아빠를 따라나섰는데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빠가 가는 길로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뒤쪽으로 연결된 매봉산으로 성큼성큼 가는 아빠를 소리쳐 불렀다.
“거기엔 아무도 없잖아. 난 안 갈래!” 아빠는 산으로 들어가야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감정의 동요 없이 그래야 괜찮을 거라는 아빠의 얼굴을 보며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산으로 들어서기 전 긴급 대피가 해제되었던 거 같다. )
여행 때마다 커다란 텐트를 치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가져간 코펠에 밥을 해 먹으며 야생의 놀이를 즐겼다. 벌레가 나타나면 소리를 꽥 지르는, 야생을 좋아하지 않은 나였지만, 지금에도 숲에서 놀던 기억이 생생한 걸 보면 꽤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울퉁불퉁한 돌멩이 위에 텐트를 치고 안에 들어가 누워서 풀냄새를 맡았던 때. 내가 걸스카우트에 입단하고 남한산성을 걷고, 강원도 두메산골에 있는 자매 학교 근처에 있는 숲에서 담력을 기르게 해준다는 밤 걷기를 하고서는 숲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없어지는 듯했다.
이사한 그곳마다 산이 있었고, 지금도 산 앞에 살고 있어서 산길을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혼자 들어간 숲은 조용했고, 부스럭 소리가 계속 들려 내 걸음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확 나를 잡아끌 것 같다는 생각에 걸음을 멈춰 다시 내려온 적이 있다. 다시 유유히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고 후회를 하긴 했지만. 그 후로는 혼자 산에 올라간 적이 없다. 지금도 우산을 쓰고 산길을 내려오는 사람을 보며 ‘와, 대박’하고 감탄할 뿐.
“나는 이제 그 산의 뒷면에 서서 바라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산의 중심부에 와 있었다.” 159
소심하고, 걱정이 많아 생각만 하고 살았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고, 나중 일을 예상하며 몸을 사렸다. 그냥 바라만 보는 사람과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삶의 방식이 다를 것이다. 셰릴이 걸으면서 생각한 질문.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은 나에게도 유효하다.
아이들이 새로 간 길을 탐험이라고 생각하듯이, 나도 상상하며 탐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직접 두 발을 딛고 단단한 땅을 힘껏 밟는 일. 앞에 어떤 길이 놓여있든지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그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정해져 있는 길 이외에도 다른 삶이 펼쳐질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가능성을 생각한다.
와일드.
그것은 단지 숲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속 야생을 향해 가는 길이다. 내 안의 가능성을 믿고, 두려움을 품은 채 한 발짝 내딛는 삶.
우리가 야생의 삶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