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마다 조금씩 자라

우울했던 날들의 고백

by 에세이가주

1. 싸울 때마다 조금씩 자라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전시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지 옆에서 하는 뭉크 전시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드문드문했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내가 좋아하는 정우철 도슨트의 음성을 들으며 천천히 그림을 감상했다. 잘 알지 못했던 화가라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들어간 전시였다. 벽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광대 그림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풍경을 그린 그림은 잔잔하고 부드러웠지만 자화상을 그린 그림은 화려하고 도발적이었다. 여러 가지 원색으로 표현한 그의 얼굴은 무언가 마음속에 꾹 누르고 있는 불만과 분노를 겉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은은한 조명 아래 걸려있는 <광대> 그림 앞에 홀로 섰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홀로 만난 광대의 얼굴은 나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려 마치 웃고 있는 듯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눈은 슬퍼 보였다. 몇 년 전의 내 모습처럼.



“너 지금 어디야? 빨리 전화받아!”

전원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스무 통이 넘는 전화와 메시지. 친정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를 걱정시키려고 그런 건 아닌데. 일단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난 잘 있다고.

네 살 아이 손을 잡고 비행기를 탔다. 갑자기 결정한 제주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쿠팡에서 당일 비행기를 예약하고 짐을 꾸렸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순식간에 숙소까지 정해 버렸다. 어린이집에 결석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편지를 써서 화장대 위에 올려뒀다. 집 앞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짐가방을 든 나를 누가 알아볼까 봐 고개를 푹 수그렸다.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제주도에 도착해 렌터카를 빌렸다. 운전도 미숙했던 내가 무슨 마음으로 무모한 일을 저질렀을까. 전원을 꺼 둔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결혼 초기 부부싸움 끝에 딸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제주도에 갔다. 딸을 옆자리에 태우고 두려운 마음으로 숙소를 찾아가던 길, 갑자기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운전대를 꽉 잡고 네비를 계속 확인하면서 언덕을 올라가던 길이었다. 이 길이 맞나? 잘못된 길이면 저기서 돌아가야 하나? 숙소 위치가 잘못되었나? 어두워지면 더 못 찾을 텐데.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뒤에 앉아있던 아이는 콧노래를 불렀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해가 질 무렵 바다는 석양빛에 은은하게 반짝거렸다.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아침부터 일을 저지르느라 조마조마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림책 <오리건의 여행>에서 오리건과 듀크가 본 황금빛 들판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서커스단을 빠져나와 가문비나무 숲을 향해 길을 떠났던 그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탁 트인 풍경을 보자 세상이 끝날 것 같았던 마음에 왠지 모를 희망이 솟았다.


칼바람이 부는 평일 오후, 숙소엔 다른 손님은 없었다. “두 분이세요? 애 아빠는 안 오고?” 2월, 눈도 오고 궂은 날씨에 어린애만 데리고 온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주인아주머니가 물었다. 2층 맨 끝 방이 숙소였다. 짐가방을 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어두컴컴한 방에 들어가 불을 켰다. 바람 때문에 문이 덜컹 흔들렸다.

하나로마트 가서 먹고 싶은 걸 담았다. 아이를 카트에 태우고 햇반, 과일, 컵라면, 밑반찬을 담았다. 3박 4일 여행 스케줄을 아이와 함께 짰다. 내 앞에 놓인 여러 가지 문제보다 이왕 제주도에 왔으니 아이와 함께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바다로, 식물원으로, 박물관으로 잘도 다녔다. 간혹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했지만. 펜션 마당에 노랗게 달린 귤을 배경 삼아 사진도 많이 찍었다. 종일 돌아다니다 밤에는 숙소로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맥주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낮에는 꺼두었던 핸드폰을 다시 켜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돌아오는 날이 돼서야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시부모님도 아시겠지? 잠적한 며느리를.’ 졸지에 가출한 며느리가 된 내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쪼그라들었다. 마지막 날,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렌터카를 반납하러 갔다. 렌터카 직원이 차를 보더니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차 문에 긁힌 자국이 있다면서. 렌트할 때 제일 싼 보험을 들어서 처리가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확인도 안 하고 다 보내주던데 왜 나한테만 바가지를 씌우냐고 바락바락 우겼다. 출발 시간은 가까워지고 급한 마음에 카드로 수리비를 긁었다. 말싸움하는 엄마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 너까지 그러면 어떻게 해 정말. 울고 싶었다. 이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시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더 멀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무작정 집을 나왔으니 돌아가면 싸움이 시작되는 건 당연했다.


결혼 16년 차, 징글징글 많이도 싸웠다. 누구는 ‘아직도 싸울 일이 있어? 그건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건데’ 한다. 과연 그럴까. 컴퓨터에서 소심하게 이혼 서류를 출력해 놓고 ‘사인해!’ 크게 소리치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마음 약해져 마음 바꿔 먹은 날도 많다. 아이들 앞에서는 웬만하면 안 싸우려고 하는데 울컥 성질을 부리고 뒤늦게 후회한다. 수많은 싸움 끝에 얻은 깨달음은 사람도 상황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상대를 바꾸려고 했던 십수 년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뒤통수에 대고 눈을 흘기면서 나는 뭘 바랐던 것인가. 이제는 전투보다는 평화가 좋다. 꾹 누르고 참는 평화가 아니라 내 감정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평화다. 화가 불쑥 올라올 때는 화가 난 내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한다.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알아차리는 순간, ‘욱’하는 마음이 옅어진다.


광대는 화려한 분장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고독과 슬픔이 감춰져 있다. 우리의 결혼 생활도 겉으로는 웃고 있었던 적 많았지만, 갈등으로 아팠을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를 더 잘 돌볼 수 있었다. 내 민낯을 바라보는 것.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그건 우리의 다툼 덕분이다. 싸움 덕분에 나는 성장했고, 내 진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았다.

갈등이 있을 때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똑바로 문제를 바라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속에 웅크리고 있던 생각들이 얼굴을 맞대는 순간 폭발했다. 많은 부부싸움 끝에 터득한 건 ‘피하지 않는 방법’이다. 이제는 체력도 체력일뿐더러 집을 박차고 나가는 것보다 조용하게 때로는 자유롭게 맞선다. 기분이 너덜너덜해질 땐 ‘네 탓’하는 마음을 멈추고 내 기분과 하루를 돌본다. 소리 높여 말할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몇 날 며칠 이불 싸매고 누워있지는 않는다.


아, 이제 싸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혈압이 오른다. 크게 심호흡을 한다. 노트북을 편다. 나는 싸울 때마다 조금씩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