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말고 성장기
마음을 바꾸려면 락스가 필요해
세탁실에 쪼그리고 앉아 쌓아 두었던 걸레를 빡빡 문질렀다. 대야에 세제를 너무 많이 풀었나.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온다. 걸레 빠는 건 월례 행사다. 뽀얗고 빳빳한 걸레를 뜨거운 물에 적셔 방바닥 닦으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는데, 쓰고 난 걸레는 내팽개친다. 세탁실 한구석 쌓여있는 걸레를 평소엔 외면한다. 가족들이 내다 놓은 빨래만 세탁기에 한꺼번에 넣고 휙 돌린다. 어쩌다 한 번씩 손빨래하는 걸레, 원래는 뽀얀 수건이었다.
점점 누렇게 변하면 들통에 넣고 삶아 다시 새것처럼 만들었던. 시간이 지나면 처음 마음도 옅어지기 마련이다. 뽀송했던 수건도 시간이 지나면서 거칠해졌다. 처음부터 걸레는 아니었는데. 구석에 쭈그러져 있는 걸레를 손끝으로 잡아 휙 던졌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엔 작정하고 좁은 세탁실에 들어가 문을 쾅 닫는다. 창문을 활짝 열고 누렇게 쭈그러져 있는 걸레를 대야에 쑤셔 넣는다. 세제를 풀고 락스도 넣는다. 고무장갑 끼고 슬슬 주무른다. 신혼 때 남편과 다투고 다용도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콸콸 틀어놓고 걸레를 빨았다. 빨랫비누로 문지르다가 대야에 넣어 마구 휘젓는다. 물에 푹 적신 걸레를 다시 꺼내 양손으로 마구 치대며 들어 올렸다 내렸다가를 반복한다. 마치 수타 우동집 면발 뽑는 광경처럼. 내가 치대고 비트는 게 내 마음인지, 걸레인지, 남편인지 그때는 몰랐다. 그 시절만 해도 속으로 소심하게 분을 삭이던 시절이라 웅얼웅얼 욕을 하면서 흐르는 물에 마음을 씻어 내렸다. 거품이 확 일어나고 구정물이 하수구로 흐르는 순간, 여러 번 헹구어 뽀얗게 변한 걸레를 보면서 우울했던 마음을 흘려보냈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걸레가 햇볕에 바삭 마르면 다시 물을 적시기가 아까웠다.
오랜만에 화장실 청소를 하려고 보니 락스가 없다. 쿠팡에서 유한락스 두 개 한 묶음을 주문했다. 로켓배송답게 아침에 주문했는데 오후에 도착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뚜껑을 열었다. 이제 락스 타임이다.
락스 냄새가 좋다. 물을 가득 채워 락스를 주르륵 부으면 수영장 냄새가 난다. 얼룩덜룩한 세면대 물때와 바닥, 하수구 주변은 락스를 콸콸 부어 버린다. 꼼꼼하게 청소하지 못한다. 그냥 대충 겉으로 반질하게만 하고 끝이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안 쓰는 수건을 락스 푼 물에 푹 담갔다가 꺼내어 고무장갑 낀 손으로 물기를 꽉 짰다. 내친김에 바닥도 박박 닦았다. 평소엔 밀대로 한번 쓱 문지른다. 아침, 저녁으로 밀어도 머리카락이랑 먼지가 시커멓게 묻는다. 거실이랑 아이들 방만해도 ‘에고’ 소리가 나온다. 청소도, 밥도, 설거지도 하기 싫은 날이 많아진다. 딸 방 들어가니 한숨이 푹 나온다. 침대 위며, 책상 위 뒤죽박죽 물건이 여기저기 어지럽다. 이 방 끝내놓으면 저 방이 신경 쓰이고, 방 정리 다 하고 나면 냉장고 정리를 해야 할 거 같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할 일이 생각난다. 이래서 내가 청소를 안 하지.
생각해 보니 세탁실에서 갑자기 걸레를 박박 빨거나, 이불을 다 걷어 빨래를 하거나, 락스로 화장실 청소할 때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마음이 안 좋거나, 화가 나거나, 불안할 때였다. 거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아들의 자잘한 잡동사니도 20리터 쓰레기봉투 꺼내 확 쓸어 담는다. 없어도 되는 물건을 이렇게 이고 지고 살고 있나 생각이 드는 순간도 뭔가 마음 정리가 필요할 때였다.
내면 소통을 읽고 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고 한다. 자아는 경험 자아와 배경 자아가 있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나는 경험 자아이고, 그 자아를 가만히 지켜보는 나는 배경 자아이다. 불교에서도 말한다. 내가 하는 모든 생각, 감정을 그냥 가만히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고. 고정된 내 생각은 없다고. 그냥 지나가도록 가만히 들여다보라 한다.
명상하고 내면 소통을 읽고 확언을 읽지만, 수련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듯하다. 화가 나면 불쑥 큰 소리가 튀어나오고, 부르르 떨고, 짜증을 확 내고, 괜한 잔소리를 해대고. 고작 락스로 청소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다니.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읽어준 그림책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을 좋아한다. 동생에게 장난감을 뺏긴 소피는 화를 낸다. 악 소리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른다. 소피 주변에도 불이 난 것처럼 빨갛게 붉어진다. 화의 폭발이다. 가족들이 무슨 말을 해도 소피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는다. 그대로 문밖으로 뛰쳐나간다. 멀리 달려간다. 계속 달린다. 도착한 곳은 숲 속이다.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에 소피 마음은 점점 고요해진다. 그제야 소피는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걷는다. 그러다 곧게 서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본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소피는 부드러워진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천천히 걸어 집으로 들어온다.
소피처럼 화가 났을 때 푸는 방법은 다양하다.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는다. 혼자 조용히 있으면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시간이 지나면 화가 풀리긴 했지만, 그건 일시적인 사라짐이었다. 혼자 부글거렸다가 기분이 좋아지면 ‘화’는 늘 빠르게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냥 멀찍이, 신경 쓰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화를 밖으로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도 몰랐다. 참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쌓이고 쌓이면 한 번씩 폭발했다. 이제는 넘칠 때까지 나를 두지 않는다.
화가 난 이유는 다양하다. 가족들은 다 늘어져 있는데 나만 종종거릴 때, 저녁 시간은 다가오고 설거지는 또 쌓여있고, 아이들과 남편은 핸드폰만 보고 있을 때 화가 난다. 강아지 자두 똥도 내가 치우고, 산책, 목욕도 내가 시킬 때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내 할 일이다’ 생각하지만, 지칠 때는 화가 치민다. 살림도, 육아도, 일도 어느 순간엔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이게 정말 맞을까’ 마음이 흔들거릴 때도 불쑥.
혼자 방에 들어가 방문을 확 닫아버리고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를 착착 접고 방바닥에 널브러진다. 책상 위에 쌓여있는 책들이 유난히 부담스러워질 때, 바로 그때가 락스 타임이다.
기름때 잔뜩 묻어있는 프라이팬엔 퐁퐁과 베이킹 소다를 잔뜩 뿌려 놓고 수세미로 그릇을 닦는다. 뽀득 개운해질 때까지 헹군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붓고 수세미와 솔을 넣는다. 락스 뚜껑을 열어 쏟는다.
락스 냄새가 진동한다. 락스에 담가 둔 솔로 싱크대를 문지른다. 물때가 껴 있는 싱크대를 박박 닦는다. 아들이 무슨 냄새냐며 코를 틀어막는다. 부엌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차가운 물을 쏴아 튼다. 물 때, 찌든 때, 마음에 쌓인 찌꺼기까지 다 흘러 내려가라. 얼룩덜룩해진 행주까지 락스물에 담갔다가 여러 번 헹궈 바람 잘 통하는 창문 밑에 널어놓았다. 오늘은 이걸로 끝. 부엌일 끝. 살림 끝이다.
불안하고 화나고 짜증 나는 마음이 울컥하고 올라올 때 많다. 이건 예측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수시로 훅 하고 밀고 들어온다. 엄마의 마음, 여자의 마음, 갱년기의 마음이다. 난데없이 불쑥 들썩이는 마음은 자기 전에 원상태로 돌려놓는다. 오늘 흘려보낸 락스만큼 내일은 뽀애진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서. 마음의 얼룩을 제거하려면 그냥 결심하면 된다. 과거의 습관, 생각, 고정관념 깡그리 바꾸겠다는 결심. 얼룩덜룩한 마음을 바꾸려면 락스가 필요하다. 마음도 바꾸고 집도 깨끗해지고. 이게 바로 일석이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