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오른 날

천마산 가을 산행

by 에세이가주

천마산 입구에서 9시 20분에 만났다. 내일모레 안나푸르나 간다는 친구와 아들과 함께 가을 산 오르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해가 없어 오전 시간은 으스스했다. 은행나무숲에 며칠 전보다 훨씬 많은 은행나뭇잎이 떨어져 있다. 이제 다음 주면 다 떨어질 것 같다. 목적지는 정상이었지만 지레 겁먹은 나는 아스팔트 길 끝까지만 가기로 처음부터 마음먹었다. 두 아들들도 산에 오르는 게 시큰둥한지 뺀질거리며 속도를 내지 않는다. 중간중간 나무 의자에 앉아 쉬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풍경에 계속 감탄하면서. 빨갛고 노란 나뭇잎, 바람이 부니 머리 위로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중간까지 가서는 아이들도 속도를 낸다. 나뭇잎을 던지고 달려서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정한 목적지 아스팔트 끝길에서 친구는 짐을 덜어놓고 앞으로 올라갔다. 정상을 향해서. 나와 아이들은 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옆에서 앉아 있던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말한다. "어서 올라가야지."

짐을 챙겨 다시 가방을 멨다. 이 동네에서 십 년을 넘게 살았는데 정상 한번 가보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요즘 일주일에 세 번은 산에 오르니 좀 단련되지 않았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산길로 접어드니 가파른 길이 계속 나왔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숨이 훅훅 쉬어졌다. 옆에 있는 밧줄을 잡고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35분만 가면 정상이니까 갈 수 있다! 속으로 되뇌면서. 몸이 가벼운 아들은 나를 앞서간다. 친구와 아들은 먼저 앞서가서 보이지 않는다. 헬기장이 있는 곳까지 가면 그다음부터는 완만하다고 하는데. 내가 느끼기는 여전히 가파른 산길이다.


낙엽이 쌓여 있는 길을 밟는 느낌이 좋았다. 내려올 때 미끄러질 뻔했지만. 항상 오르던 중간 지점에서 보는 뷰도 좋았지만, 정상에 가까워지니 볼 수 있는 풍경은 차원이 다르다.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저 멀리 풍경까지 한눈에 다 보인다. 사방으로 탁 트인 하늘을 보니 마음도 트인다. 연신 사진을 찍고 다시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사진으로만 봤던 천마산 기념비와 태극기. 내가 직접 올라 볼 줄 몰랐다. 혼자라면 또 중간까지 갔다가 내려왔을 텐데 함께 올라간 친구 덕이다. 이야기하며 오르고 내리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올라갈 만했다.

내려올 땐 허벅지가 후들거리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마도 삼사일은 또 근육통 때문에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혼자서 정상을 오를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정상을 찍는 사람보다는 설렁설렁 걸으며 풍경을 즐기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번 주는 아마도 약수터까지만 갔다가 내려오겠지.

아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우리는 오늘 정상을 찍고 내려온 사람들이라고^^

언젠가 또 정상에 가게 될 날이 온다면 튼튼한 등산화와 스틱도 준비해야겠다. 오늘보다 더 즐기면서 쉽게 올라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