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법을 배워야하는 이유. 산드로 보티첼리
토마 슐레세의 <모나의 눈> 은 시력을 잃을지 모르는 열 살 소녀 모나가 할아버지 앙리와 함께 매주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며 예술과 삶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미의 세여신>을 통해 '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그림 속 비너스와 세 여신 앞에서 한 여성이 선물을 건네받는 장면이다. 앙리는 모나에게 말한다.
"자기가 아직 갖고 있지 않은 것, 자기가 아직 될 수 없는 것을 맞아들이기."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해내기 위해선 인간 본성이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앙리는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며, 변화의 시작이라고.
우리는 흔히 '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베푸는 사람, 나누는 사람이 되라고 배운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받아들임에서 시작된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다. 내게 없는 것, 내가 모르는 것, 내가 아직 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겸손이다.
그림 속 여성이 손을 내미는 자세처럼, 우리는 타자에게 자신을 열어야 한다. 예술을 받아들이고, 타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삶의 교훈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한다. 보티첼리의 또 다른 그림 <프리마베라> 속 님프 클로리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한 것처럼.
예술 작품은 그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건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작품이 주는 아름다움과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행위다. 받아들임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다. 내 안에 없던 색깔, 감정, 생각을 받아들일 때, 조금씩 나의 세계는 넓어진다.
시력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모나가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할아버지에게서 온 사랑이, 예술의 아름다움이 그녀를 변화시키겠지. 아직 루브르 챕터의 첫 꼭지만 읽었는데도, 기대가 되는 책이다. 앙리 할아버지와 모나가 하루에 단 한 작품만 감상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깊고 그윽한 그림의 세계로 걸어들어갔으면 좋겠다. 기대하는 마음을 가득 안은채 오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우리는 모나처럼 불완전한 존재다. 아직 갖지 못한 것, 아직 될 수 없는 것이 많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성장하고 변화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삶의 모양들을 그저 덤덤히 맞이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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