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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껍질 Aug 14. 2023

작은 집이라도, 모든 단계가 필요하다.

엄마의 집짓기


"건축을 하면 10년 늙는다더니, 그 말이 맞았어."


여름이라고 주말마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오랜만에 천안집에 방문했다. "오늘은 벽돌을 쌓기 전 방수작업을 해주실 아저씨가 오시고 오후에는 벽돌 사장님이 잠시 들리실 거야, 내일은 조명 아저씨가 오고."라며, 몇 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의 말을 통해 광덕산에서 두 분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건축을 해주시는 기술자분들은 남자분들이 많다 보니, 아빠는 오시는 분들과 일정과 비용 협의를 하고 엄마는 식비를 줄이기 위해 집밥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건축 초반에 하루 4번을 말다툼과 의견조율 그 중간쯤의 커뮤니케이션을 했던 두 분이었는데, 안정적으로 분업이 되고 서로 의지하시는 것 같아 딸로서는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사실 두 분은 쏟아지는 업무들로 다툴 틈도 없어 보였다. 그날도 아침 6시가 되니 방수작업을 해주실 아저씨가 오셨다. 엄마는 아침부터 좋아하는 셰프의 영상을 보며 점심 준비를 시작하시고, 아빠를 아저씨와 작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나는 아빠를 따라 마당에 가서 방울토마토와 오이김치를 만들 오이를 따왔다.


아침으로 먹은 옥수수와 방울토마토
오이 김치 만드는 중


오늘 분의 방수작업이 끝날 때쯤 완성된 가지 요리는 밥에 비벼 먹어도, 그냥 숟가락으로 푹 퍼먹어도 너무 맛있었다. 옆집에서 받은 상추와 가지, 마당에서 따온 농작물들로 만든 요리는 서울에서 먹지 못한 진수성찬이었다.

다시 먹고 싶은 가지 요리


식사 후에는 궁금하면 구경하고 오라는 엄마의 말에, 쪼르르 나가서 방수작업해 주신 곳들을 구경했다. 아저씨께서 주로 수영장에서 방수 작업을 해주시고, 이렇게 좋은 산속에서 하시는 건 흔치 않다고 하셨다. "좋은 곳에 사시네요"라는 아저씨의 말씀에 새삼 덥다고 안에만 있지 말고 공간을 만끽하자는 생각에 건축물 안을 둘러보았다.


방수 작업한 흔적


천안에 올 때마다 올라갔던 곳이지만, 한여름의 쨍한 햇빛 아래에서 보니 또 새로웠다. 부모님과 아저씨가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2층의 가장 뷰가 좋은 곳에서 강아지를 무릎에 두고 함께 낮잠을 잤다. 풍경 구경만 하려 했는데, 시골에 오면 왜 더 쉽게 노곤노곤해지는지 금방 잠들어 버렸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씨지만 산이라서 덜 덥고 덜 습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2층에서 바라본 1층 뷰
광덕산 뷰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


오후에는 벽돌 사장님이 작업할 벽돌들을 두고 가셨다. 어떻게 쌓으면 될지 태양볕 아래서 한참을 이야기한 아빠는 녹초가 되어 긴 낮잠을 잤고, 엄마와 나는 아이스크림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벽시계보다 작은 시계를 만들 때 더 손이 많이 가는 것처럼, 작은 집도 똑같아. 작더라도 생략되는 단계는 하나도 없어. 그걸 여기서 엄마아빠가 다 하고 있는 거야."라는 엄마의 말에 두 분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동안 엄마가 꿈쟁이인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집 짓기라는 장기적이고,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밀고 나갈 뚝심도 있는 사람이었다니, 새로운 발견이었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아빠라고 생각했는데, 빈 땅에 건축물을 올리겠다는 엄마의 꿈을 함께 해주는 아빠도 새삼 멋지게 느껴졌다.


마당을 가득 채운 벽돌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벽돌 표면


벽돌은 단열, 방수 등 모든 밑작업이 완료된 후 바깥에 두르는 포장 같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포장이라도 외부 인테리어의 핵심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이 벽돌을 고르기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면 또 할 이야기가 한가득인데 이 과정은 다른 글로 풀어보겠다.


현재 건물 모습


시골의 하루는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난다. 오전 중에 몰아쳤던 일들이 오후가 되니 얼추 정리가 되고 다시 여유로운 저녁이 다가왔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 매력적인 이곳, 광덕산에서 갤러리를 열고 사람들이 작품과 자연을 함께 만끽하는 그 순간이 왔을 때 이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앞으로의 여정들도 힘들겠지만 부모님을 닮은 멋진 공간이 잘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별이 쏟아지는 광덕산의 밤


그럼 안녕! 다음 글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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