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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 Sep 16. 2022

어머니 저도 자식 노릇은 처음이거든요

[챕터] 어쩌면 당신의 가족

삼 일째 밥은커녕 물도 거의 안 먹고 방에만 박혀있는 우리 쁨이. 배고플 텐데... 답답할 텐데... 어른답지 못하게 유치했던 내가, 엄마답지 못한 내가 너무 밉다. 굳이 시시비비를 따져 잘못한 사람이 누군지를 가려본다면 일언반구도 없이 외박하겠다고 통보한 우리 쁨이인 것 같은데 나는 어쩌다 죄인인 듯 죄인 아닌 죄인 같은 죄인이 돼버린 걸까. 


形勢 逆轉(형세 역전)

해가 중천인데도 방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조용히 들어가 보니 침대 아래 바닥에서 뜨겁게 자고 있다. 나는 에어컨 쌩쌩 나오는 거실에서 삼일째 시원하게 살고 있는데 내 새끼는 푹푹 찌는 한여름에 저렇게 문 꼭 닫고 있으니 얼마나 덥고 답답할까. 


못났다, 못났어. 내가 참 못 났어. 친구랑 놀러 가서 외박 한 번 한댔다고 독립하라 그러고, 독립하면 집에도 오지 말라 그러고, 쌀도 김치도 아무것도 안 준다 그러고. 그게 부모가 돼서 할 소리냐. 애도 아니고 자존심 대결이여 뭐여. 덥디더운 방에서 삐쩍 골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며칠 전 주문한 밀키트 택배가 갑자기 도착했다. 두부 콩나물 쑥갓 넣어서 끓여주면 우리 쁨이 밥 한 공기 뚝딱할 텐데. 오늘은 밥 먹여야 하는데... 어떤 말로 밥을 먹일까. 거두절미하고 사과부터하고 밥부터 먹자고 할까. 불편하려나... 방으로 넣어줄까. 아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고민 끝에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전 내 인기척에 깼던 건지 침대 위로 올라가 자고 있었다.


보기도 아까운 내 딸인데... 세상 귀하고 착한 내 딸인데 외박 그게 뭐라고 애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냐... 더 어릴 적부터도 외박하는 애들도 있다는데 내가 우리 쁨이를 너무 애기로만 보는 건가... 나 때문에 삼일째 밥도 안 먹고 이게 뭐냐고 진짜...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쁨이가 놀라서 깼다.


"... 밥해주면 먹을 거야?"

"반찬 뭔데..."

"동태탕이랑 뭐 이것저것..."

"동태탕 그게 뭐야..."

"쁨이 어릴 때 엄마랑 한 번 먹은 적 있는데 맛있게 잘 먹었었어..."

"그래...? 그럼 먹을래...!"

"그래, 그럼..."

"엄마..."

"응..."

"안아줘..."


우리를 서로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엄마가 미안해..."

"나도 미안해, 엄마... 내가 한 말 오해하지 말고 상처받지 마... 지금까지 사는 동안 엄마도 누구도 나한테 허락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었는데... 지금보다 더 어릴 때도 안 들었던 말을 지금 와서 엄마가 갑자기 하니까 이해가 안 돼서 그랬어... 우리 엄마는 원래 안 그러잖아. 나한테 엄마 생각, 의견 다 얘기해주고 내 생각은 어떠냐고, 나한테 선택하라고 하잖아...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안 하고 갑자기 허락받으라고 하니까... 나 진짜 엄마 무시해서 그런 거 아니야... 상처받지 마, 알겠지...


그랬다. 누가 먼저일지는 모르지만. 혹시라도 내가 먼저 우리 쁨이 곁을 떠나게 된다면 엄마 없이 살아가게 될 우리 쁨이를 위해, 혼자서도 소중한 삶 잘 개척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웬만한 선택은 스스로 하게 했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 또한 온전히 자기 몫임을 가르쳐 왔다. 그랬던 엄마가 느닷없이 허락이라는 단어를 구사하니 다 커서 제재당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도 같다.


혹시 내 말에 상처받거나 충격받은 게 있는지 물었다. 엄마가 집 나가라고 하고 나가면 집에 오지 말라고 했던 게 상처였고 충격이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독립해서 쁨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고 했지"

"그게 집 나가라는 말이지..."

"그렇네... 그래서 나가려고 했어?"

"아니? 어차피 나갈 생각 없었는데..."

"엄마도 독립시킬 생각 없었는데 그렇게 맘대로 살고 싶으면 나가서 한번 살아 봐라 하는 마음에서 했던 말이었어. 미안해... 처음으로 우리 쁨이 혼자 가는 타지 여행인데 휴가철 이 성수기에 여자애 둘이서 그것도 관광지로 가면서 숙소도 안 정했다고 하니까 엄마는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 그래서 엄마가 혹시나 하고 찾아봤거든? 지금도 봐, 마땅히 잘 곳이 없어. 엄마 생각에는 너희 둘이 밤늦도록, 새벽까지 숙소 찾아 헤맬 게 뻔한데... 요즘 세상에 어린 여자애 둘이 가는 거니까 엄마는 걱정되지.. 서운하기도 했고...

"그랬어?"

"그랬지... 쁨아, 엄마는 우리 쁨이 독립시킬 생각 1도 없어. 그리고 당장도 아니고 졸업하고 나가라고 한 거면 시간도 엄청 많이 남았는데 엄마 마음이 진심 아니었다는 거 알지?"

"아니? 엄마도 내 마음 다 모르잖아..."

"그래, 서로 말하지 않은 속 마음을 어떻게 알아. 모르지... 엄마가 정말 미안해"

"나도 엄마 무시해서 한 말 아니니까 엄마도 오해하지 말고 상처받지 마, 알겠지...?

"응. 그리고 집에 오지 말라고 한 건 엄마가 아주 잘못한 거야. 부모로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나빴어. 정말 정말 미안해. 우리 딸은 이제 애기 아니야. 스무 살 성인 언니야. 그렇지?"

"아니, 성인 애기야!"

"왜 또 애기야?"

"엄마도 애기야. 엄마도 성인인데, 엄만데 서툴잖아. 나도 그렇게 서툴고 그러니까 성인이지만 애기지."

"그렇네. 우리 쁨이 말이 맞다. 엄마도 서투르고 우리 쁨이도 서툴러. 그래서 우린 다 애기야. 미완성. 그래도 이제는 우리 딸 성인 됐으니까 엄마가 내려놓기 연습할게. 독립은 우리 쁨이가 아니라 엄마가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우리 딸이 덜 피곤하고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지. 쁨아 엄마가 엄마 노릇이 처음이라서, 서툴러서 그런 거니까 조금만 이해해 줘... 알겠지?


우린 다시 세상에 둘도 없는 껌딱지 단짝으로 돌아왔다. 쁨이의 뼈 때리는 한 방과 함께.


어머니 저도 자식 노릇은 처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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