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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텔라 Jun 05. 2024

크게 라디오를 켜고

“57분 교통 정보입니다.”

지하철역에서 걸어가기엔 조금 먼 장소라 마을버스를 탔더니 한적한 버스 안을 라디오 소리가 꽉 채우고 있었다.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듣기 위해 다른 콘텐츠는 잘 듣지 않고, 지하철로 이동할 때는 아무것도 안 듣거나 이따금 오디오북을 듣기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듣는 라디오였다.



내 라디오 역사의 황금기는 중, 고등학생 때였다. 나이차이 나는 사촌 언니, 오빠들 덕분에 라디오도 또래들에 비해 일찍 접했다. 명절이나 가족모임 때 친척집에 가면 졸린 눈을 비비며 다 같이 라디오를 듣다 자곤 했다. 내 라디오 입문작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별밤)”다. 사촌 오빠가 100통이 넘는 신청 엽서를 보내서 별밤 캠프에 갔을 정도의 애청자라, 하나밖에 없는 라디오의 주파수 선택권 따위는 내게 없었다. 그전까진 그냥 ‘얼굴 긴 가수 아저씨’라고만 알고 있던 ‘이문세 아저씨’였지만 무려 십 년을 넘게 ‘별밤지기’로 밤 10시에서 12시를 지켰던 그답게 금세 나를 애청자의 길로 이끌었다. 사연을 읽어주는 다정다감한 저음의 목소리와 게스트들과 합이 잘 맞는 유머, 밤의 감수성을 따스하게 감싸던 선곡들까지. 가히 내 최애 프로그램이라 할만했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나도 한해, 한해 성장했다. 눈물과 함께 듣던 마지막 방송 이후 DJ가 바뀌었을 때, 좋아하던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영 적응이 되지 않아서 잘 안 듣게 됐던 기억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 설문 결과 '별밤'과 이문세가 압도적으로 1위에 뽑혔다

집에 와서 별밤을 들었다면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야자) 시간에는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를 들었다.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잠도 쫓아주었고, 게스트로 아이돌들이 자주 나와서 좋았다. ‘상큼한 오빠들’의 목소리만으로도 그 지겨운 야자시간을 버틸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별명이 ‘시어머니’였던 교감선생님이 자는 것은 혼냈어도 이어폰을 꽂고 있는 것을 내버려 뒀기 때문에 도시락은 놓고 올 망정, 워크맨은 꼭꼭 내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재밌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할 시간에는 한창 밖에서 노느라 정신이 없던 나날들이 이어지면서 어느새 라디오는 점점 내 삶과 멀어져 갔다. 


다시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건 어느덧 세월이 훌쩍 지나 첫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나는 칼퇴근을 하는데 남편은 야근이 한창 많았던 때라 늦게 왔다. TV를 보는 것은 안 좋아했고, 집이 적막한 것은 싫어서 태교도 할 겸 클래식 FM을 계속 틀어놓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라디오에 나온 사연들 모음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사실 ‘두 시 탈출 컬투쇼’가 훨씬 재밌는 사연들이 많지만 한창 근무할 시간이라 본방송을 듣긴 어려웠다. 그래서 아침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전현무의 굿모닝 FM"을 듣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범국민 지각 방지 프로젝트, 기상!’ 코너에 사연을 보냈고, 생방송으로 전화가 연결된 적이 있었다. 전현무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연기를 하면서 전화해서 늦잠 자는 사람들을 깨우는 코너였다. 하지만 왠지 사연에 뽑힐 것 같았던 나는 실시간으로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이미 ‘서프라이즈’라는 전제부터 틀린 채로 시작한 통화는 진행될수록 ‘아... 이거 망했구나!’를 실시간으로 느끼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화 통화가 끝나고 무디(전현무 DJ의 애칭)가 길게 한숨을 쉬었던 것 같기도 하다. 대차게 방송을 말아먹은 이후로 라디오만 봐도 이불킥과 벽치기를 하고 싶어 졌기에 또 한참을 라디오를 듣지 않았다. 이 방송을 녹음한 파일이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긴 할 텐데 다시 들어볼 의향은 0%다. 


글을 쓰며 이문세 아저씨가 별밤지기를 얼마나 오래 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6월 3일부터 13년 만에 DJ로 복귀한 이문세’란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아쉽게도 평일 오전 11시~12시 방송이라 사실상 듣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내가 애정하는 DJ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세월이 좋아져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며 사연을 보낼 엽서를 꾸미던 시절이 아니라, ‘스마트폰 앱’을 통해 ‘보이는 라디오’의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로 받은 사연을 듣더라도 라디오만의 ‘아날로그 감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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