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네 온 김에 잠깐 아파트 놀이터에 간 참이었다. 둘째는 타고 싶은 놀이기구에서 먼저 놀고 있던 아이를 보더니 대뜸 나이부터 물었다. 다행히도(!) 동갑인 덕분에 금세 절친이 된 세 명은 놀이터를 열심히 휘젓고 다니면서
나는 1층에 살아서 엘리베이터를 안타도 되고
나는 누나도 있고 형아도 있고
나는 우리 엄마가 힘이 세고 (이중 주차된 차를 밀고 온 내 얘기다. 사실이지만 조금 부끄러웠다)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수다를 떨었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정말 쉽게 친구가 되는구나. 나이만 같다고 바로 친구를 시켜 주다니, 진입 장벽이 없다시피 하다. 놀이터에 도착한 지 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친구를 만든 아이를 지켜보며 가장 최근에 사귄 '친구'가 누구인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새로 알게 된 동네 사람, 거래처 직원, 아이 친구 엄마는 있지만 '내 친구'라 부를 사람은 세월을 조금씩 거슬러 생각해 보아도 선뜻 꼽을 수 없었다.
친구(親舊).
1. 명사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2. 명사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다 같은 나이(빠른 생일은 있더라도)라 친함의 밀도와 부피는 다를지언정 다 '친구'로 묶일 수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친구'라는 관계를 맺음에 있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닌 인위적인 노력이 들어가게 된 것이. 같은 학번, 같은 과이더라도 재수생과 장수생이 있어 동갑이 아닐 수 있었기에 그 사람의 인적 정보를 탐색하고, 같은 수업을 듣는지, 관심사가 겹치는지에 따라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커녕, 다른 과에 비해 학생 수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안 해본 동기도 있다.
사회로 나와서는 더욱 그러했다. 직급과 경력, 하는 일의 차이로 인해 단순히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동갑이라는 사실로 인해 아무렇지도 않던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했다. 어느 한쪽이 '급'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친구로 묶이지 않았다. '급'을 나누는 기준이야 넘쳐난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
육아를 하면 사람을 만나는 일이 한층 오묘해진다. '나'뿐 아니라 '내 아이'까지 얽힌 관계가 되면 순수한 친구 사이란 유니콘과도 같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아이 둘의 사이가 좋고, 엄마끼리도 적당히 예의를 차릴 수 있는 성격이라면 잘 봐줘서 ‘친한 엄마’ 포지션이 된다. 교문 앞에서 인사만 하는 관계도 은근히 부담인지라 아이 친구 엄마랑은 놀이터까지만 딱 좋다.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고, 호구 조사를 혐오하는 나에게 아이한테 너희 집이 몇 동 몇 호인 지를 물어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던 아이 친구 엄마는 트라우마로 남았다(심지어 그 엄마는 다른 집의 자가 여부까지 나와 공유하려 들었다).
살면서 나름 인복이 있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친구복은 별개인 것 같다.
환갑이 넘으신 엄마는 아파트 노인정에서 서너 살 정도의 나이차는 가볍게 무시하며 ‘절친’ 관계를 맺으셨다. 나도 저 나이 때쯤 되면 ‘친구 사귀기’의 벽이 좀 낮아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