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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 세바시 강연 후기 1편

by 글쓰는 스텔라

15분이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해 들어 매일 하고 있는 필사 한 바닥을 하는데 대략 그쯤 걸린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마시는 우리 회사 남자들은 점심 한 끼를 끝낼 수도 있다. 단편 소설은 한 꼭지 정도 읽을 수 있고, 9호선 급행열차를 타면 여의도에서 신논현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지하철역에서 하차 태그 후에 잽싸게 중고 거래를 하고 다시 환승이 가능한 시간도 15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15분.

강연 시간은 고작 15분이지만 곱절은 더 많이 강연의 여운을 되새기는데 보내게 하는 프로그램.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은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 나의 몇 안 되는 구독 리스트 중 하나다.

좋은 기회가 생겨 세바시 강연을 방청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님, 김경일 교수님, 박재연 소장님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니! 정성껏 신청서를 작성한 내 마음이 세바시에도 닿았는지 방청객으로 선정이 되었다.


첫 번째는 박재연 소장님의 강연이었다.

상실을 경험한 당신이 비탄을 넘어 애도로 가기까지


원래는 다른 주제를 준비했다가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바꾸셨다고 했는데 그만큼 지금 시기에 딱 필요한 강연이었다. 상실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박재연 소장님은 이를 크게 여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의미 있는 존재의 죽음, 관계의 단절, 건강의 악화, 사회적 지위나 역할의 변화, 소중한 물건이나 상징물의 분실, 자아나 정체성의 좌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를 단 하나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실에 대처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울 수도 있고, 외면할 수도 있고, 빠져있을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고, 지우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상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대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상실을 경험하면 비탄의 과정을 거쳐 충분히 애도를 해야 한다. ‘충분히’에는 공식도 정답도 없다.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제 그만해. 이제 그만 슬퍼해. 이제 보내줘.”라는 말은 어쩌면 또 다른 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


나는 보통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응어리가 남아 있다. 충분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애도를 충분히 하지 못해 생긴 구멍은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애도는 인간의 경험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심오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슬퍼하고, 그 사람의 기억을 계속해서 소중히 여기는 심오한 능력은 우리 고귀한 인간의 특징 중 하나’


상실은 슬픈 일이긴 하지만 단지 잃는 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즐거웠던 기억, 고마웠던 점까지도 애도하며,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을 삶에 재배치하고 애도를 넘어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소중한 삶’이 계속될 수 있도록.


두 번째 강연자는 추성일 대표님이었다. 본인과 아내는 물론, 쌍둥이 동생과 제수씨까지 모두 산부인과 의사인 탯줄수저(!) 집안이셨다.

여성이 건강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역시 산부인과 의사라서 그런지 바람직한 주제를 가지고 나오셨다. 여성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본인도 행복한 줄만 알았는데 남자가 산부인과 의사라서 겪는 편견과 어려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했던 경험을 말씀해 주셨다. 나도 필수 검진 외에는 산부인과는 가기 꺼려졌고, 결혼 전에는 무조건 여자 의사만을 고집했던 것 같다. 출산 때 수많은 후기를 읽으며 고민 끝에 남자 의사를 선택했고, 모두 좋은 분이셨기에 지금은 그렇게까지 남자 의사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그가 느꼈을 좌절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저출산 시대에 산부인과 의사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아이를 둘이나 낳았지만 사실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병원에서 축하받는 유일한 과’. 대부분의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은 병의 확정이다. 하지만 산부인과는 약간 다르다.

임신테스터기를 통해 몇 번이나 확인했어도, 의사에게 직접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를 듣기까지 그 두근거렸던 마음. 진단을 받는 순간의 기쁨과 행복. 그것은 산부인과 의사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이다.

첫째를 낳았을 때 임신을 앎과 동시에 예약을 해야 입소가 가능했을 만큼 인기 있던 조리원은 폐업했고, 둘째를 낳을 때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여성병원도 몇 년 전 업종을 변경했다. 지인이 있었던 조리원은 요양원이 된 지 오래고, 동네의 가장 큰 유치원은 요양 병원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산부인과가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더군다나 선호도가 낮은 남자 의사로 살아남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가지고 자신이 옳다고 하는 일을 향해 열정을 더하는 삶의 태도,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는 자세를 이 강연에서 배울 수 있었다.



* 가수 장하은 님, 장강명 작가님,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 후기는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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