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바시 강연 후기 2편
** 1편(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이어집니다.
세 번째는 기타 연주가 장하은 님의 강연이었다. 다른 강연자들에 비해 훨씬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힘을 뺄 때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자신을 아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나를 과소평가(나를 작게 볼 때)할 수도 있고, 내 능력보다 과대평가(나를 크게 볼 때)할 수도 있다. 장하은 님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내가 나를 제대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나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기 위해 세 가지 다짐을 했다고 한다.
하나, ‘척’ 하지 않을 것. 진실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억지로 꾸미지 않기로 했다. 둘, 증명하려 하지 않을 것. 셋,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이 순간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질 것. 실수는 실패와 같은 말이 아니기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용인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TV를 잘 안 보고 매번 듣는 음악만 들어서 사실 이 분은 잘 알지 못했는데 강연의 내용과 강연 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팬이 되었다.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경험도 있다고 하더니 수준 높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클래식 기타는 오시오 코타로의 ‘황혼’ 같은 잔잔한 연주만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선입견을 깨준 공연이었다.
잘 모르는 분야의 강연자도 강연을 통해 새롭게 알게 하고 좋아지게 하는 힘. 이게 바로 세바시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타리스트 장하은의 로망스 연주 (출처: 인투 TV)
네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인 장강명 작가님이었다.
삶의 불확실성, 그 안에서 찾는 차분한 희망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발표한 인기 작가지만 그에게도 아픔과 고난의 시절은 존재했다. 잘 다니고 있던 신문사를 갑자기 퇴사하고, 전업 소설가의 길을 걷고자 했을 때의 경험과 심정을 차분하게 말씀해 주셨다.
어떤 일이 불현듯 찾아왔을 때, 불운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비관하면 안 된다. 그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즉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자신의 퇴사가 소설가로서의 새로운 시작에는 도움이 되었듯이 말이다. 또한 일이 잘 되어서 행운이 찾아왔다고 해도 쉽게 들뜨면 안 된다. 미래는 불확실한데 단편적인 사건만으로 현재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쉽게 비관하지도, 쉽게 들뜨지도 말고 희망을 품고 차분하게 살자고 말씀하셨다.
작가님의 강연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전화위복(轉禍爲福)'. 두 마디로 줄이면 '인생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가 아닐까(나름 '한국이 싫어서'를 패러디해보았다).
책에 사인 받을 시간은 없을 것 같아서 안 가지고 갔는데 녹화가 끝난 후 잠깐의 여유가 있어서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 대신 작가님과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행복해졌다. 이게 바로 작가님께서 강연의 주제를 몸소 보여주신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다음에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꼭 사인 받을 책을 챙기리라!
마지막으로는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이었다. 언제나 유쾌하고 재밌는 강의를 해주시는 분이라 좋아하는데 역시나 기대 이상의 강연을 들려주셨다.
감사의 의미와 힘
간단명료한 주제일 것 같지만 역시나 교수님의 강연은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하지만 안다고 다 실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교수님은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터키 대지진 당시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어떻게 감사를 표현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만족과 감사는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르다. ‘만족’이 있는 그대로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웠던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박재연 소장님이 강연한 주제인 ‘애도’와 비슷한 이야기도 나왔다. 행복에 대한 감사를 하는 것이 중요한 애도이며, 이때 애도는 상처회복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지난번 글(‘빛이 이끄는 곳으로’ 리뷰)에서도 얘기했지만,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결이 닮았다. 정답은 없지만 정답처럼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두 분 덕분에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가게 직원이나 전화 상담원 같이 친밀하지 않거나 다시 안 볼 사람에게는 "감사합니다"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감사할 일이 더 많고, 가까운 사이인 가족에게는 그 표현에 인색하다. 그래서 더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매번, 기꺼이, 그때마다, 어떻게 감사할지 작게 고민하며 자신만의 기둥을 쌓아가는 방법을 말이다.
감사를 표현하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서로를 만져주는 스킨십은 특히 부모님께 좋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계속해서 지켜봐 주는 것.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는 이런 비언어적 표현도 상대방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사랑하니까 그만큼 더 많이 감사해야겠다.
다섯 분의 강연 모두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유튜브를 통해 보는 것도 편하고 좋지만, 다른 사람들과 호흡하고 공감하며 같은 공간에서 들으니 더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미처 몰랐던 부분에 대해 배우고, 강연자들의 경험에 비춰 나를 돌아보며 치유받는 시간이 되었다.
세바시 앞으로도 흥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