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그리움의 밤

by 글쓰는 스텔라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이 시를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뭐라는 거야. 너 미쳤냐? 그리고 전화는 네가 했거든"

- 오호통재라(이건 그 아이의 말버릇이었다)! 너는 여고생이면서 감수성 같은 건 어디에다 팔아먹은 거야?

김용택 시집 (출처 : 교보문고)

교과서에 나온 시 외에는 잘 몰랐던 나와 달리, 한때 문학소녀를 꿈꿨던 모친을 둔 그 아이는 시를 많이 알고 있었다. 이 시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달이야 매일 뜨는 거지만 보름달이 뜰 무렵만 되면 꼭 전화를 걸어와 시의 첫 문장을 읊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느새 물들어, 달빛이 곱게 부서지는 밤이면 서로 경쟁하듯 전화를 걸어 시를 읊었다. 우리의 하굣길엔 시와 달빛과 우정이 함께했다.


소위 ‘티키타카’가 되는 친구였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고민하던 것도 비슷했고, 대화도 잘 통했기에 성별도 지역도 넘어 우리는 곧 ‘절친’이 되었다.

수험생의 한풀이, 신화의 신곡 평가, 읽고 있던 책 얘기, 서로의 급식 자랑(이건 항상 명문 사립고를 다니던 그 아이의 완승이었다)까지.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밤새 전화로 나누었다.

전화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다 사진만 본 상태에서 처음 만난 날,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서로의 이상형과 너무도 달라 우리는 순수한 우정만을 나눌 수 있겠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서른 살이 돼도(그땐 그 나이까지 결혼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둘 다 솔로라면 그냥 우리 둘이 결혼하기로 했다.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처럼 담백할 거라 싸울 일도 없을 거라며 낄낄거렸다.


그 친구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선 서울살이가 낯선 그를 위해 이곳저곳을 함께 다녔다. 대학 입시 원서를 내러 왔다가(그 당시엔 무조건 방문접수였다) 고속터미널에서 헤매는 놈을 잡아다가 일회용 승차권을 구입하고 지하철 타는 법도 내가 알려줬고, 은행에 교통카드를 만들 때도 같이 갔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자주 와 본 것 마냥 능숙하게 주문하는 법도, 백화점에서는 구경만 하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싸게 사는 비법도 내가 전수했다. 녹색극장에서 ‘엽기적인 그녀’를 볼 때도, 홍익문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책을 읽을 때도 우리는 함께였다.


그러다가 서로에게 애인이 생기면서 우리 사이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서로의 연인은 우리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비록 서른 살에 정략혼을 약속한 적은 있었지만) 자꾸만 오해를 받으니 억울하기도 했다.

연인에게 매번 변명을 해야 하고, 서로가 원인인 다툼에 지쳤는지도 모른다. ‘남자친구’에게 기대하는 바와 ‘남자인 친구’에게 기대하는 바가 엄연히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해 못 해주는 남자친구에게도, 여자 친구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도 짜증이 났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결국 그 아이와 크게 싸우고는 연락을 하지 않게 됐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다툼이었지만, 한 번 아니라고 정하면 절대 번복하지 않는 성격마저 닮았던 우리의 우정은 그렇게 차갑게 끊어져버렸다.


알고 지낸 햇수는 길지 않았지만 서로의 격변의 시대를 함께하며 누구보다 깊은 교감을 나눴던 사람을 잃는 건 힘들었다. 연인이 아닌 '남사친'과 헤어진다는 건 이별의 아픔과는 결이 다른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었기에 그와의 절교는 그대로 메워지지 않은 구멍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가끔 생각이 났지만 바쁜 일상에 치이면서 서서히 잊혀갔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세바시 특강 때 박재연 소장님이 상실의 경험을 생각해 보라고 하자, 느닷없이 마음속 구멍에서 그 아이가 튀어 올라왔다. 벌써 이십여 년도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아픈 기억과 함께.

우리가 같이 보던 달빛은 마냥 신나고 근사했는데, 강연 후 돌아오는 길에 본 달빛은 그냥 처연하기만 했다.

어딘가에서 너도 이 달을 보고 있을지, 가끔은 내가 생각나긴 할지, 너도 나처럼 메워지지 않은 구멍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답을 알 수는 없다.

끝나버린 인연의 서글픔만이 사무치는 나이가 되어버린 탓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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