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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편한 반려질병

by 글쓰는 스텔라

또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알았다. 이 망할 놈의 병이 재발했음을. 어째 한동안 잠잠하다했다. 원인은 언제나 그렇듯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일 테지. 요즘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일이 있기는 했다.

역시나 쉽게 넘어가지 않고 바로 터져주는구나, 넌.

[이석증(Benign paroxysmal vertigo)]
- 증상 : 안구진탕, 구토, 어지러움
- 관련질환 : 전정신경염
- 진료과 : 이비인후과

* 정의
이석증은 주변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심한 어지럼이 수초에서 1분 정도 지속되다가 저절로 좋아지는 일이 반복되는 증상입니다. 이석증은 어지럼의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여기서 양성이란 심각한 귓병이나 뇌 질환이 없는데도 어지럼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원인
이석증의 증상인 어지럼증은 귓속 깊은 곳의 반고리관이라는 구조물 내부에 이석이라는 물질이 흘러 다녀서 발생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석이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오면, 자세를 느끼는 신경을 과도하게 자극하여 주위가 돌아가는 듯한 증상이 생깁니다.
이유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종종 외부 충격, 골밀도 감소, 바이러스 감염,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해 이석증이 유발되기도 합니다. 모든 나이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40~50대 이후에 더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증상
어지럼은 경미한 정도부터 공포를 일으킬 정도까지 다양합니다. 어지럼의 특징은 회전하는 느낌입니다. "코끼리 코 돌기"를 한 뒤의 느낌이나, 놀이공원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 기구 안에 앉아 있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어지럼은 보통 갑자기 발생합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서거나 돌아누울 때 잘 발생합니다. 어지럼이 있는 동안에는 균형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거나 쓰러질 수 있습니다. 또한 속이 메스꺼운 느낌이 동반되며 심한 경우 구토를 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서울 아산 병원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2429
에서 일부 내용 발췌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날도 더웠고, 몸도 힘들었고, 집과 직장 양쪽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날이 이어지던 내 생애 최악의 7월. 하루하루를 그냥 버텨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할 그런 날들이었다.

알람을 듣고 일어나려던 순간,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저혈압 때문에 아침에는 종종 그런 적이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을 보충하면 괜찮겠지 싶어 식탁에 있던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바로 토기가 치밀어 화장실로 비틀거리며 달려갔다. 소싯적 내일이 없던 것처럼 술 마시던 다음 날 숙취를 닮아있었다. 먹은 것이 없기에 나오는 게 없다는 것만 달랐을 뿐.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언니들이 이미 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확신했다.

아! 이게 이석증인가 보다. 조금 누워있으면 나아지겠지 하며 누웠는데 똑바로 눕거나 왼쪽으로 누우면 세상이 막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바로 팀장님께 연락을 드려 급하게 월차를 냈다. 이석증이면 이비인후과로 가랬지. 어차피 병원은 9시에 문을 연다. 그 시간까지 좀 누워있자. 본능적으로 자세를 잘 잡았는지 어지러움이 좀 덜해졌기에 어찌어찌 애들을 챙겨 보내고 병원으로 향했다. 바닥이 자꾸 달려드는 느낌이라 가로수를 붙잡고 한 발짝씩 떼며 10분 거리를 30분 만에 갔다.


이석증을 잘 본다고 소문난 의사 선생님은 진료 의자에 앉은 지 1분도 안되어 진단을 내렸다.

"이석증 맞네요. 그것도 엄청 세게 왔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석 치환술이라고 돌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시술이 있어요. 어지럽겠지만 이거 하면 괜찮아지니 일단 시도해 봅시다."


VR체험기기 같은 걸 쓰고 누워서 이쪽을 쳐다봤다 저쪽을 쳐다봤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시술을 받았다. 자세 고정을 위해 시선을 맞추라고 했던 점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내 몸이 보내는 신호라고. 제발 좀 쉬라고, 몸 좀 아끼라고.

치료는 겁냈던 거에 비해서는 빨리 끝났고, 치료비는 생각보다 비쌌다. 대기실에서 잠깐의 고민을 더한 후, 진단서 발급을 요청했다.

"아무래도 병가를 내야 할 것 같아서요."


병가를 낸 동안 거의 누워서만 지내며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비록 병가가 끝나고 복직한 지 3일 만에 재발된 병으로 인해 퇴사하게 됐지만. 아마 퇴사하지 않았으면 다른 병도 터지지 않았을까 싶다. 우울증이라던가 공황장애라던가, 뭐 그런 마음의 병들. 가래로도 막지 못했을 뻔한 거 호미로 잘 막은 셈 치기로 했다.


그 이후로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병은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평소보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몸이 허덕이거나, 고민거리가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한 날들이 이어질 때 예고도 없이 불현듯 나타났다. 애초에 '완치'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성가신 병이기도 하다. 그것과의 불편한 반(半) 동거 생활을 몇 년 하고 난 후, 이제는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더 나빠지기 전에 울리는 경고음 같은 거라고.

눈을 떴을 때 '핑 도는 느낌'이 들면 아무리 중요한 일정도,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고민도 과감히 끊어냈다. 내 몸, 내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도 노력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어지럼증이 나를 괴롭히는 시간도 현저히 차이가 난다.


사실 지난주에 글을 건너뛰고, 이번 주도 건너뛰려던 변명을 길게 늘어놓아 보았다. 지금도 100%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억지로라도 잘 먹고 잘 쉬려고 했더니 많이 나아졌다.

반려질병과의 이 불편한 만남을 줄이기 위해 조금 더 내 몸이 보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자주 만나고 싶은 것까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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