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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Aug 10. 2023

MZ가 MZ한 이유

말투에 담긴 세대심리와 시대상

MZ세대


난 이 단어를 싫어한다. 이 단어를 뉴스나 기사에서 봤을 때부터 굉장히 어색했다. 10년 전 학교에서 세대구분을 배우며 밀레니얼 세대를 배웠는데, 그다음 세대로 불리는 Z세대와 그 앞세대인 밀레니얼 세대를 묶어서 부르다니,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를 하나의 세대로 묶어서 부르는 것과 같은 수준의 어색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나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매체가 아닌 일상에서도 'MZ세대'가 요즘 젊은 세대를 칭하는 단어로 고착화되었고, 나도 반쯤 포기한 상태로 농담처럼 '완전 MZ다', '역시 MZ네' 같은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MZ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쓰이게 된 2021년 후반 무렵, SNL코리아에서 주현영 배우가 연기한 인턴기자가 유튜브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젊은 사회 초년생의 풋풋하면서도 어색한 모습이 느껴지는 특유의 말투와 표정, 그리고 제스처까지. 거기엔 분명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내가 대학에서 본 친구들의 모습, 그리고 나의 모습도 담겨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사회시간, 수행평가 발표를 내가 담당한 적이 있다. 어떻게 발표를 진행할까 고민하던 나는 대본을 보면서 제자리에서 진행하는 딱딱한 발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TV에 ppt화면을 띄워두고 비좁은 교실 앞에서 좌우를 걸어 다니면서 청중들과 아이컨택을 하고 각종 제스처를 사용하면서 격정적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티브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 영감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발표 시작 2분 만에 '정신 사나우니 가만히 좀 있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바로 제자리를 찾고 점잖게 발표를 진행했다.


이러한 내 과거와 주기자의 모습이 겹쳐 보여 더 몰입해서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았고 크게 웃으며 친구들과 이를 공유하였다. 그러나 웃음을 걷어내고 그 내면을 살펴보면 이 말투와 행동 속에는 요즘 세대의 심리와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기자와 요즘 세대의 말투를 몇 가지 살펴보면서 이를 한번 분석해 보자.


'젊은 패기'로 신속 정확한 뉴스를 전달한다!

안녕하세요? 인턴기자 주. 현. 영.입니다.


주기자는 인턴기자임에도 그 특유의 '젊은 패기'로 프로처럼 뉴스 기사를 전달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프로처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인턴 기자라면 직장에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됐을 텐데 어떻게 프로처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한 문장 한 문장, 그리고 자기 이름은 특히 더 또박또박 말하려 하고 안영미 앵커의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아 보이려고 한다. 그 노력하는 말투와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어색함과 함께 젊은 세대의 애환도 느껴진다.


요즘 취업시장은 그야말로 '스펙 경쟁'이다. 과거에 비해 대학 성적 만으로는 지원자의 능력을 판단하기 힘들어지니 기업은 지원자가 대학 성적 이외에도 어떠한 경험을 했고, 어떠한 스펙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그러다 보니 취업준비생들은 과거의 지원자들에 비해 더 많은 경험과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그 문턱은 계속해서 높아져간다.

 

그러나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뛰어난 어학성적과 여러 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경력직이 아닌 이상 실무적인 측면에서 신입은 신입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처음에는 미숙한 것이 당연하다. 본인이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기자는 안영미 앵커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지 않은 척하면서 어떻게든 대답을 하려고 애매하고 이상한 답변을 늘어놓으며 앵커와 시청자들을 더 혼란스럽게 한다. 이러한 주기자를 보면 처음임에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일종의 완벽주의적 강박이 느껴진다.


음.. 일단 좋은 질문? 지적? 암튼 감사합니다.

그 부분은 ~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자는 요즘 20대 여성들에게서 특히 많이 볼 수 있는 말투다. 물음표가 있는 부분에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눈동자를 굴리고 말끝을 올리는 것이 주현영 배우가 잘 잡아낸 포인트다. 완벽한 묘사에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후자인 '~한 것 같다'라는 표현은 요즘이 아니더라도 한국인들이 전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으려는 한국인 특유의 겸손함이 담긴 표현이지만 최근에는 그 사용빈도가 더 높아졌다.


두 문장 모두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화자인 자신조차 확신하지 않는다는 책임 회피적 심리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내가 한 말이 틀렸거나 듣는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공격을 선제적으로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 책임 회피보다는 방어적 표현에 가까운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다. 각종 매체에서 본인이 속한 집영과 반대 진영에 대한 비판을 넘어 비난을 하는 모습까지 자주 볼 수 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이런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지만, 비난과 혐오에 과하게 노출된 나머지 일상적인 표현까지 방어적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했고 완벽해 보이고 싶지만,

아직 미숙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외부의 비판에 민감하고 방어적인 사회 초년생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의 표상이다.


이를 생각해 보면서 주기자의 영상을 한번 더 시청해 보라.

주기자의 맑은 눈 속에 젊은 세대의 애환이 보이고,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 SNL코리아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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