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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Aug 09. 2023

나는 삼성이 무서워졌다

대기업은 어떻게 인재를 유치하며, 진정한 노동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 글 중 일부는 대기업이 인력 확보를 위해 취하는 전략이 취업과 입시를 준비하는 개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는 의도로 작성되었으며,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자체를 비판할 의도로 쓰이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몇 년째 반도체가 열풍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기차, AI, 스마트폰, 컴퓨터 등 현대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술들에 있어 반도체는 건물의 벽돌과 같은 기본 뼈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업무처리가 일상화되면서 디지털 기술의 수요와 함께 반도체 자체의 수요도 급증하였다. 최근 경기침체나 공금 불균형 등으로 인해 반도체 업계도 타격을 입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반도체 산업이 미래지향적인 산업이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반도체 산업에는 여러 세부 산업 분야가 있지만 크게 2가지로 나누어보면 칩 설계 후 생산을 위탁하는 팹리스(Fabless)와 칩 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Foundry)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팹(fab)이라고 불리는 공장이 필요한데, 수 조원 가량의 자본이 필요하기에 파운드리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규모의 커다란 자본력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그러한 경우인데, 팹리스를 담당하는 스타트업은 많이 생겨나는데 반해 삼성과 같은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모두 담당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삼성은 최근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반도체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R&D 투자와 기술 인력 유치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2022년 상반기에 삼성전자에서 인턴을 한 경험이 있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회사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통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에 대해 느끼게 된 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 대기업이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


대기업은 그 자체의 거대한 자본력으로 다양한 인재들을 유인한다. 자본주의적 시장논리에 입각한 지극히 당연한 방법으로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특히 반도체 업계에서 기술력과 자본력을 동시에 보유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이 부분에서 대규모의 인력을 유치할 수 있다는 커다란 이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인재채용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겪고 있는 고충이 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수요에 비해 전문인력 공급이 부족한 것이다. 이는 자본력으로 인한 대규모 인력 유치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근래에 들어 인력 수요가 급증한 소프트웨어 분야가 그러하고, 반도체 분야 또한 그러하다. 이를 위해서 경쟁사에 있는 전문인력들을 자회사로 유인하거나 신입사원들을 오랫동안 회사에서 전문 인력으로 육성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더해 또 다른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대학입시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 yourstory.com

- 기업과 대학의 계약으로 탄생한 인재 확보 전략


최근 서울 소재 대학과 과학기술원 등에서 특정 기업과의 계약을 통한 학과를 만들었다는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학과는 '학비 100% 지급'(학비 외 추가적인 장학금 지원 정책이 있는 경우도 있다.), '졸업 후 100% 해당 기업 취업 보장' 등의 다양한 복지 혜택을 내세우며 학과를 홍보한다. 내가 입시를 하던 시기에도 이런 학과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이다. 언뜻 보면 취업을 보장하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학과는 같은 대학의 다른 학과들에 비해 지원 경쟁률이 더 높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이러한 학과들에는 대부분 특별한 입학 조건이 있다. 졸업 후 해당 기업에 입사하지 않거나 특정 햇수 이상 근무하지 않으면, 기업에서 받은 모든 혜택을 다시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력으로 학생을 특정 학과를 넘어 특정 기업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대학 진학과 입시제도에 기업과 시장논리가 개입하는 것이다. 대학은 어떤 곳인가?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학문의 요람이 아닌가? 이러한 시장 개입은 대학을 학문의 요람이 아닌 취업사관학교로 전락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가상의 고등학생 A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자.


A는 진로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나 목표는 없었지만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그 결과 목표로 한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학과를 고민하던 중 특정 학과가 A의 눈을 사로잡았다. 학비 100% 지원, 졸업 시 100% 취업 보장. 거기에 해당 학과와 계약을 맺은 기업은 누구나 선망하는 일류의 대기업이다. 물론 해당 기업에 입사하지 않으면 해당 금액을 반환해야 하지만 밑져야 본전 아닌가. A의 부모님도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고, 명확한 목표 학과가 없던 A는 이 학과에 원서를 접수하였다. 그리고 기쁘게도 이 학과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입학한 이후 비극이 발생한다. 대학에 입학한 후 기초 과목과 함께 취업에 필요한 전공 수업을 듣는 A는 이 분야와 자신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꿋꿋하게 공부하던 A는 괜찮은 성적을 받고 어느새 4학년이 되었고, 졸업 전 학과와 계약을 맺은 기업에서 몇 달간 인턴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회사 생활을 할수록 자신이 이 분야와 맞지 않는다는 확신만 늘어갔다. A는 결국 해당 학과에 진학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극단적인 가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실제로 내가 인턴생활 중 만난 동기의 대학 지인이 겪은 일이다.

이것이 내가 삼성이 무서워진 이유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기업의 인재 유치 전략이고, 대학 진학과 학과 선택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지만, 그 과정에 기업과 시장논리가 개입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비극의 책임을 기업에만 물을 수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이미 취업을 위한 관문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극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그 원인이 '노동의 가치'의 부재에 있다고 본다.


- 젊은 세대들은 왜 직장을 떠나는가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최근 노동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살펴보자.

최근 대기업이나 공무원에 합격한 젊은 직장인들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이직을 준비하거나 몇 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당장 그만두지 않더라도 짧은 기간 동안 고강도 근무와 재테크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빠른 퇴사를 꿈꾸는 파이어족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왜 젊은이들이 직장을 떠나는 것일까? 단순히 MZ세대의 배부른 소리로 들리는가? 그러한 관점으로는 이 현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고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이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진정한 노동의 가치


과거에 노동의 의미'가난의 극복'이었다. 전쟁 이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뤄낸 산업화 세대의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산업화와 경제화를 달성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의미는 무엇일까? 노동의 의미를 찾고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음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이 직장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젊은 세대들이 직장을 떠나는 이유는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위의 질문에 최종적인 답을 내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정해진 답은 없으며, 각자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혹은 '이 분야가 미래에 유망하기 때문에'라는 단순한 답을 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일의 목적이나 원동력이 될 수 있고 그러한 사람이 많이 있지만, 그것이 노동의 본질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거나,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회사도 개인이 위의 질문에 답을 낼 수 있도록 충분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해주어야 한다. 단순한 사내 복지정책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연봉을 높이고 커리어를 쌓는 목표 이상의 가치를 회사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찾는 것, 이것이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사진출처 : 참여와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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