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2023년 12월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핸드폰 화면의 스크롤을 죽죽 내리고 있었다. 직사각형 화면을 통해 보는 타인의 삶은 그럴듯해 보였다. 자신의 모습이 예쁘게 나오는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친구와 연인과 함께 보낸 시간을 화면 상에 고이 보관했다.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는가 하면 물건을 팔고 나를 팔아 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곤 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그대로 얼려놓은 것 같은 SNS는 언제든 구경하기 좋은 곳이었다. 세상은 재밌는 곳이구나. 다양해 보이지만 하나같이 비슷하네. 그 비슷함의 향연에 무감각해질 때쯤 한 게시물에 손이 멈췄다.
붉은 바탕 위에는 흰색으로 글씨가 쓰여 있었다. 한 문장을 채 다 읽어 내려가기도 전에 나는 이 글이 내 글임을 알았다. 브런치 스토리에 '수인'이라는 필명으로 올린 나의 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은 당신에게』의 일부가 떡하니 남의 게시물에 올라와 있었다. 이전에도 종종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온라인에 올린 내 글의 아이디어나 개념을 자기 것인 양 가져가는 사람들은 있었다. 너무도 교묘했기에, 그리고 아이디어나 개념은 무형의 것이기에 뭐라 말은 못 했지만 항상 속앓이를 하던 터였다. 그런데 내 글의 한 단락을 그대로 가져와서 아주 살짝만 비튼 글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원작자가 자신의 글을 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걸까? 설령 본다고 하더라도 표절임을 인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남의 글을 가져가서 양념 조금 해 넣으면 이제 그 글은 자신의 것이 된 거라고 생각한 걸까? 왜? 어째서? 근 세 달 동안 매일 몸살기에 시달리고 몇 날 며칠을 울어가며 토해내듯 쓴 내 글을, 품어내고 품어내다 결국은 쏟아내듯 쓴 내 글을, 내 자식 같은 글을, 어버이인 내가, 어머니인 내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내 글을 자신의 글인 것처럼 베껴낸, 그러니까 자신이 낳지도 않은 글을 자신의 것이라고 은연중에 아니 대놓고 주장하고 있는 그 가짜 어버이는, 거짓 산고를 겪은 그 어미는, 한 번도 작가이거나 저자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그 작자는 투명하게도 '내가 당신의 글을 표절했소'라고 전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두가 볼 수 있는 SNS 상에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기어코 그 글을 발견하고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석 달을 배 아파, 아니 머리와 몸이 아파 세상에 내놓은 그 글은 아프고 힘들었던 지난날이 담겨있는 글이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미술계에서 겪은 차별과 억압과 배제를 풀어놓은 글이었다. 이 글이 알려진다면 다시는 미술계에서 일하지 못할 각오를 하고 써 내려간 글이었다. 때로는 분노에 차 있고, 때로는 슬픔에 잠겨있고 때로는 아픔에 살갗이 스치듯 쓰린 글이었다. 그리고 그런 글을 가져간 사람은 나와 같은 미술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내 글을 가져간 작자는 그럴듯해 보이는 제목의 미술 에세이집에 공동 저자로 글을 실었다. 펀딩으로 책을 출간하기 위해 SNS 계정을 만들고 책에 실린 글들의 일부를 공개한 그들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직 큐레이터가 되지 못한 사람들,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코디네이터, 혹은 학예 보조 인력이라 불리는 사람들. 일은 일대로 하지만 제대로 된 대접은 받지 못하는 사람들.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들을 공중에 선보이겠다는, 고결하고도 당찬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일과 그 모든 불합리함을 견디는 사람들, 예술과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관 뒤편에서 먼지 뒤집어써가며 자신을 숨기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쓴 글과 그녀가 쓴 글 모두 부당함에 관해 이야기했다. 보이지 않는 땀방울과 차별에 관해 항변했다. 이렇게 말한들 오랫동안 고착화된 문화가 바뀔 리 만무했지만 그럼에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기에 허공에라도 헛된 발길질 한번 해보는 글이었다. 그녀는 '연대'를 이야기했다.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누군가의 글을 가져가서 억울함을 토로하며 '함께'의 가치를 입에 담았다. 차별받는 개인도, 소수도, 집단도 결국에는 차별받는 다른 개인을 짓밟으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분노를 참지 못한 나는 그녀의 글을 캡처해 친구와 지인들에게 보냈다. 그녀가 내 글을 베낀 것이 확실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인 중에는 편집자로서 25년의 경력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출판 편집자는 "표절이 맞는 것 같다"라고 의견을 내면서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내 글을 읽은 독자와 출판계에서 오래 일했던 전문가의 눈에 표절임이 분명해 보여도 법적으로 이를 입증하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분노는 슬픔과 무력감으로 바뀌었다. 억울함에서 솟아나는 눈물이 가실 때까지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꼭 유명한 작가가 될 것이다.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를 소재 삼아 글을 쓸 것이다. 세상에 알릴 것이다." 멋지게 복수하는 나를 상상했다.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서점 판매대의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놓이고 나는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진다. 자신들끼리의 잔치로 끝났던 그 공동 에세이집에 공동 저자로 참여한 그녀가 무색하게 나는 작가로 성공한다......
내 글을 베낀 작자의 얼굴이나 보려고 출간 기념회에 갔다. 손에는 펀딩에 참여하여 우편으로 받은 공동 에세이집이 한 권 들려있었다. 기회와 인간성을 박탈하는 문화에 항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비장했고 공기는 무거웠다. 그 어떤 연대에도 속하지 못한 나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마음으로 관객석에 앉아 내 앞에 앉은 저자들을 응시했다. 뒤바뀐 주체와 객체에 다시금 분노가 일었고 누군지 꼭 색출해 내리라는 생각으로 억울하다며 항변하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시도는 헛수고로 끝났다. 내 글을 표절한 작자는 그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표절한 자신이 부끄러웠을까? 내가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그렇다면 나는 대체 그 작자의 얼굴을 봐서 무얼 하려고 했던 걸까.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그 작자의 얼굴에 물이라도 끼얹으려고 했던 걸까. 분노와 경멸에 찬 눈빛을 드러내어 무거운 공기를 아예 얼어붙게라도 만들고 싶었던 걸까. 그런 클리셰를 반복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클리셰를 변주해야만 새로워질 터인데 그 순간만큼은 그녀처럼 나에게도 변주를 할 독창성이 없었다. 우리 모두는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을 숨긴 채 나의 글을 가져갔고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누군가가 어디서든 내 글을 노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타인의 삶을 보는 데는 그렇게도 빨랐던 손이 내 이야기를 하는 데는 움직이지 않았다.
넘쳐나는 SNS 속 글들을 보며 생각한다. 무의미한 재생산, 자신의 것과 타인의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 비슷함 속에서 자신을 찾아보겠노라고 결국 남의 것을 가져가는 이기심. 이 모든 것이 뒤섞인 세상 속에서 나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작가로 살겠다는 꿈을 지킬 수 있을까. 용기를 얻고자 작은 공모전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지만 지난 2년여간 거의 절필에 가까운 시기를 보냈다. 그 작자는, 아니 그 사람은, 아니 그녀는 글을 쓰고 있을까. 여전히 차별과 배제에 맞서고 있을까. 타인의 생각과 글을 배려하는 성품은 길렀을까.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이 다 무슨 소용일까.
붓은 꺾었지만 마음까지는 접지 못해 다시 글을 쓰고 있다. 너도나도 글을 쓰고 너도나도 같은 생각을 하는 시대에 마음과 생각과 글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언젠가 내 책이 세상에 나온다면,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용서를 해야만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한다. 누군가 나처럼 절필에 가까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나도 내 글을 지킬 터이니 당신도 당신 글을 지키면 좋겠다고. 그렇게 비슷함의 무감각 속에서 나만의 감각을 지키기 위해, 나와 타인을 지킬 날을 세우기 위해 무언의 작가들과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