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지망생 일기 - 1
밤 11시를 향해가는 시간. 지금 나는 글과 덩그러니 놓여있다. 머릿속에서는 갖가지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답답하다고 꺼내 달라고 아우성치는 그 모든 생각과 감정들. 꺼내 주지 않으면 한순간의 한숨이 되어 사라져 버릴 것들. 혹은 끈덕지게 남아 언제고 나를 다시 찾아올, 은근하지만 강렬한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마주한다는 것은 사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 30주년이 되던 해에 나는 리마인드 웨딩을 선물로 준비했다. 부모님이 어떻게 사진을 찍으시면 좋겠냐는 사진작가님의 물음에 주저하지 않고 외쳤다. "서로 마주 보는 사진이 많으면 좋겠어요!"
마주한다는 것은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세월이 담긴 눈동자 속에서 서로를 읽는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과 감정이 서려 있는지 눈동자에 지난 시간들이 담긴다. 누군가의 역사가 담긴 그 눈을 읽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다. 글은 나의 지난 삶을 읽기 위해 달려든다. 때로는 지난 아픔과 상실을 그저 너른 품으로 받아주기 위해 팔을 벌리고 잠자코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글을 쓰다 말고 웅크려 운다. 온몸을 동그랗게 말고 무릎을 감싸 안은 팔 속으로 고개를 묻는다. 끅끅 거리는 울음소리가 행여 옆집에 들릴까 봐 걱정된다. 저 여자는 왜 저리 밤마다 우는 걸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지. 날 것의 내 감정들을 정제시켜야 하는 이 순간이 반갑고도 두렵다. 나를 헤집어내 까발리면 까발릴수록 아직도 생생한 생채기가 드러난다. 이제 그 아픔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주고 어루만져줄 때다. 이런 쓰라린 과정을 글을 쓸 때마다 반복한다.
내 우울감이 짙게 배인 글이 되어버릴까. 아니 이미 그런 글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에 공개하겠다는 건 무슨 까닭일까. 자신의 우울만으로도 버거운 삶들에 내 우울과 슬픔까지 전가시켜야 하는 걸까. 혹은 나도 이렇소만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자 하는 걸까. 그저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밤이기에 끄적이지만, 나조차도 목적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글을 쓰고 있다. 작가이기도 작가가 아니기도 한, 그저 쓰는 사람의 글. 나는 그럼에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길 바란다. 공감을 넘어 위로가 되길 바란다. 글이란 그렇게 서로를 이어주는 가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언어로만 존재했다면 더 깊은 의미를 담지 못했을 활자는 글이 되어 의미를 가지고 넘실댄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며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고. 그런데 이젠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