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쾌락과 고통
내겐 불안을 해소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첫 번째는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심리치료나 운동 등이다. 두 번째는 일시적 쾌락추구로 불안을 순간적으로 잠재우는 행위로,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무분별한 재화의 소비였다.
세상엔 많고 많은 물건이 있다. 그걸 다 살 수는 없어 나름의 범위를 좁혀두었으니, 나는 한때 옷과 신발에 그렇게나 집착하였다. 기분이 나쁠 때, 불안할 때, 뿐만 아니라 기분이 나빠지려 할 때와 불안해질 듯한 조짐이 보이기만 해도 당장 옷 가게로 달려갔다. 벌어들이는 돈은 전부 카드값으로 빠져나갔고, 간혹 구매한 걸 후회하며 환불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입거나 신었다. 돈이야 또 벌면 되고, 내 기분이 더 중요하다며 과소비를 합리화하며. 그러나 월급을 받은 후 카드값으로 다 빠져나가고 텅텅 비어버린 통장잔고를 볼 때면 초조했다. 남들은 돈을 아껴서 차곡차곡 모아 집도 사고 차도 사던데 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고, 그러다 보면 남들은 나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 것이며 나의 형편없는 월급으로는 어차피 돈을 모으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자조적인 결론에 도달하였고 이는 신세 한탄으로 이어졌다. 그처럼 기분이 침체될 때면 나는 기분을 풀기 위해 또다시 옷 가게에 갔다. 기분이 나쁘다 - 옷을 산다 - 돈이 없다 - 기분이 나쁘다 - 불안하다 - 옷을 산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좀처럼 끊지 못했다.
왜 하필 옷이었는가 하니, 여기엔 성장과정에서 비롯된 비합리적 사유가 존재한다. 어릴 적 본인이 고른 옷만을 내게 입히던 엄마의 고집스러운 안목에 대한 반발심이 바로 그것. 내 마음에 드는 옷은 한 벌도 안 사주고, 내가 고른 옷은 전부 촌스럽다고 말하면서, 본인이 고른 옷이 가장 예쁘니 그것을 입으라 강요하던 엄마를 향한 응축된 불만은 성인이 된 나의 옷에 대한 집착과 강박으로 나타났다. 물론 엄마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가성비가 좋으면서도 예쁜 옷을 입히고 싶어 나름 고심해서 물건을 골랐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스트릿 브랜드나 유행하던 PK티를 못 입고 자랐던 서러움은 내 안의 어딘가에 남아, 이따금씩 사소한 계기들로도 폭발해버리는 위험 요소로 자리 잡아버렸다.
일상 불안이 항시 존재하던 시절, 나는 지나가다 보이는 옷가게라면 보세 샵이건 브랜드 매장이건 개의치 않고 어디든 들어가 마음에 드는 티셔츠 한 장이라도 사들고 나왔다. 옷을 구매할 때 느껴지는 힘과 권력,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고 있다는 통제감이 좋았다. 하지만 돈으로 산 권력이 얼마나 갈까. 값비싼 원피스도, 근사한 재킷도 일주일이 안 되어 초라해져 보였고, 그러면 나는 또 다른 옷을 고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나와 옷 가게를 누비거나 혹은 집에서 온종일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거렸다. 이젠 안다. 내가 그때 찾아 헤맸던 것은 예쁜 옷이 아니라 잃어버린 나의 자존감이었다는 걸.
선생님, 저 절제가 안됩니다. 어떻게 하나요. 돈을 벌면 전부 써버리고, 그것을 주체하기가 어렵습니다. 주체하면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요. 라고 말을 했을 때, 선생님은 나의 월 급여와 생활비와 카드값을 물었다. 나의 대답에 선생님은 감당 못할 정도의 지출은 아니네요. 그 정도면 괜찮아요. 사채까지 끌어다 쓰며 문제를 악화시키는 사람들도 있는걸요 뭐. 라며 위로했지만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돈을 모으고, 미래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인데, 왜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지. 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 저는 소비를 하며 늘 마음이 불편합니다. 저는 돈을 잘 모으지 못하고, 어쩌다 모이면 모인 돈으로 살 수 있는 비싼 옷이나 신발을 골라 어떻게든 다 써버려요. 미래를 생각하면 돈을 모아 목돈을 마련하는 게 옳잖아요. 다들 그렇게 하고 있는 거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근데 왜 안될까요. 제게 뭔가 문제가 있나요? 라고 물었을 때의 선생님의 정확한 대답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사지 말고 집으로 돌아와 노트에 적어보고, 며칠 생각해 본 후 그래도 사고 싶다면 그때 사라는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의 조언대로 하지 못했으며 상담이 끝난 직후 곧바로 백화점으로 달려가 쇼핑을 했다. 다만 선생님이 했던 말을 꽤나 의식하게 되어 쇼핑을 하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였다가 문득, 아.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하고 일주일 만에 현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사는데도 정작 입고 나갈만한 옷은 마땅치 않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현타. 내가 구매한 물건들이 적절한 기준이나 판단에 의해 산 것이 아님에 오는 현타. 원하는 스타일도 없고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헤매며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쓸모없이 허비해온 것에 대한 현타. 우르르 쏟아지는 현타가 가리키는 건 단 하나, 시간을 쓰는 나의 방식에 대한 고찰. 나는 불안해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물건을 고르러 다녔던 것이었으며, 그러나 물건을 고르고 구매하는 행위는 내 인생에 부재한 만족감을 채워주기엔 형편없이 모자랐다. 결국, 마시고 마셔도 목이 타는듯한 갈증이 있다면 그것은 갈증이 아니라 다른 문제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난 더는 홀린 사람처럼 쇼핑을 하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도 옷을 고르러 다니는 걸 좋아하고, 이따금씩 구매할 생각도 없으면서 매장에 들어가 서성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때처럼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뭔가를 찾아 무작정 헤매며 하릴없이 온종일 시간을 보내며 집안에 잡동사니를 그러모으는 짓은 안 하고 있다. 그때 구매한 옷과 신발 중 상당수는 누군가에게 주거나, 팔거나, 버렸다. 정리하던 도중 찾아낸 몇 가지 물건들은 기가 막혔다. 키가 168cm인 내게 13cm짜리 하이힐이 있었다. 신고 나간 기억이 없으며 밑창도 안 닳아있는 것으로 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후 신발장 구석에 처박아뒀던 듯하다. 고급 의류 브랜드의 제품이지만 세일해서 구매한 9만 9천 원짜리 원피스는 사이즈가 작았는데, 살을 5킬로만 빼고 입어야겠다 생각했지만 결국 살을 빼지 못했기에 한번도 입고 나가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입지도, 신지도 않으면서 아까워서 못 버렸던 것들을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조금씩 정리해 나갔다.
지금의 나는 재화의 소비를 경험의 소비로 전환했다. 내가 쇼핑에 중독되었던 것은 새로운 것을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뭔가가 꼭 물건일 필요는 없을 테니, 그 돈으로 다양한 취미를 가져보자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나는 드로잉, 운동 등 경험이 없었던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했고, 읽어본 적 없는 책을 과감히 구매해 완독했으며, 모임에 나가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고 내 생각을 말하는 법을 배워나가며 지난 몇 년간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부지런히 이어져 온 나의 취미생활과 대인관계 형성의 뿌리는 불안에의 고찰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요즘도 매일 새로운 경험을 찾아 적절한 타이밍에 소비하고 소화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도예체험을 해보고 새로운 악기를 배울 것이며, 이전에 갖고 있던 전시 감상과 드로잉 취미와 운동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이런 활동들은 새로운 옷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내 인생에 가치 있는 일임을 느낀다. 경험의 소비는 나를 성찰하게 하고, 성찰은 불안의 근본적인 치유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저마다 벗어나는 방법은 다양할테지만, 만약 당신의 인생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면 쭉 흘러가다 문득 현타가 오는 순간에 주목해보자. 현타는 내가 나에게 주는 기회며, 각성의 순간이다. 나는 소비 중독에서 벗어난 일을 계기로 지금도 가끔 어떤 상황에 대해 현타가 올 때면 그것에 대해 곰곰이 짚고 넘어가곤 한다. 내 허무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끝없이 사유하며 계속해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뭐 어쨌든 모든 순간에 나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갖고 물어봐주는 사람이라면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나뿐일 테니까.
TIP. 비슷한 뭔가를 계속 사들이는데 도무지 내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면 따져보는 게 어떨까요. 구매한 물건이 무엇인지, 구매로 인한 나의 득과 실은 무엇인지, 내가 도대체 왜 이것을 계속 사들이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나의 구매를 다른 뭔가로 대체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요. 여기에 저는 한 가지 더, 무엇이 충족된다면 소비를 멈출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봤었는데요. 그랬더니 사는 게 행복하다면 더 이상 소비를 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거죠. 현타가 온 시점엔 어쨌든 계속 옷 따위를 사는 걸로는 내가 좀처럼 기분이 좋아지거나 행복해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던 것 같고요.